▲도예공방 응향원의 도자기 가마.
최방식
늦깎이가 부른 소요도 잠시. 막걸리가 돌고, 그들 삶이 펼쳐집니다. 치악산 북서쪽에 자리한 '박장대소'. 박순섭씨와 장춘학씨가 2012년부터 일구는 원주시 소초면 평장리에 있는 농장. 쥔장 박순섭씨가 명함을 건넵니다. 여생이 매년 6월이면 오디·고추(잼만들기) 따기, 밤줏기 등 품앗이 여행을 가는 곳. 두 분 성씨와 크고 작은 키를 빗대 지은 이름. 재밌네요.
홍천에서 농장을 일구며 '도농다리' 하는 지봉일 신임 이사. 그의 영원한(?) 직책은 이장이죠. 생명농업을 하며 도시와 농촌을 잇는 가교 역을 하고 있고. 요즘 태백산 명이를 도시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있죠. 막걸리 안주로 즐기는 명이김치도 그렇게 나온 것입니다.
처음엔 그를 모를 뻔 했습니다. 수염을 짧게 잘라버렸기 때문이죠. "아깝다"고 토로했더니, 좌중이 찬반으로 갈립니다. "음식 묻으면 꼴불견"이라는 쪽과 "헤밍웨이급 구수한 멋" 평이 팽팽합니다. 쉰 중반인데 머리, 수염, 눈썹이 정말 하얗거든요.
동해에서 유기농 콩식품 전문기업 '바리의 꿈'을 운영중인 김현동 선생. 1950년대까지 세계 제일의 콩 생산지 연해주(만주). 소련 해체 뒤 10여년 방치된 농장을 가꿔 오갈 데 없는 고려인(스탈린이 시작한 고려인 흩어놓기)의 정착지원 사업을 시작한 '바리의 꿈'. 그 유기농 콩으로 메주, 된장, 청국장, 콩기름, 두부 등을 생산·판매하고 있죠.
'바리'의 유래가 궁금했는데, '바리데기'에서 따왔다네요. 갖은 고생 끝에 생명수를 구해 자신을 버린 아픈 아버지(임금)를 구하고, 북극성이 돼 생명을 관장하게 됐다는 신화 속 바리공주. 근현대 조국과 동북아 나라에서 버림받고 핍박받으며 사는 한국인들과 닮았죠.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단군 할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생명 살리는' 꿈을 실현하니 더욱.
'생명 살리는' 바리데기 꿈 키우며취했습니다. 머리가 무거워질 때죠. 수다쟁이와 곁에서 하품을 해대는 이들. 밤이 깊어가는 때. 쥔장의 외침이 좌중을 사로잡습니다. "노래할 사람 나와 봐, 여기 기계 있어." 이 산중에 웬 노래방이냐고 혀를 차는데, 다들 마이크 앞으로 줄서네요. 푸념만으론 궁색해지죠. 한 곡 안 부르면 어떻게 할 기세. 어떡하나요. 노랫말 모른다고 잡아 뗄 수도 없고...
노랫소리에 귀가 멍해질 쯤 쥔장 또 외칩니다. "사우나 하실 분..." 쥔장과 안면이 있는 권순중 선생이 나섭니다. "내가 장작불은 잘 피워." 핀란드식 사우나를 즐겨보라고 권합니다. 정말, 산중에 없는 게 없네요. 쥔장 왈 '목원수'(木原水). 나무 본성(유약을 만들려고 태우고 남은 재)을 우려 만든 물. 몸에 좋다니 관심 폭발. "가자" 소리에 하나둘 자리를 뜹니다.
산중 광란(?)의 밤은 지나고. 지치고 취해 졸았나 봅니다. 이사장 안내로 도자기 작업장 한 귀퉁이 방으로 찾아들었습니다. 꿀잠에서 깬 건 "밥 먹으러 가자"는 소리. 곁에 분이 부스스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소릴 못들은 건 아니었습니다. 따라 새벽 산책을 하고 싶었는데, 술이 '웬수'죠.
요즘 은근히 술걱정이 잦습니다. 좀 덜 먹거나 하루나 이틀 걸러 먹겠다고 다짐하지만 맘뿐. 그나마 위안은 막걸리만 상대한다는 거죠. 소주·양주·폭탄주에 찌들었는데, 더는 못 버티겠다 싶었죠. 노트북에 휴대폰, 지갑 안 잃어버린 게 없을 정도. 전향(?)을 단행했죠. 기특하게도. 화학주 말고 발효주를 마시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 그 덕에 후유증이 덜한다고 자위하지요.
구수한 누룽지입니다. 이보다 좋은 속풀이가 있을까 싶은. 밤새 식탁 한 가득 어지럽혀 놨던 음식과 그릇은 누가 치웠을까 궁금합니다. 몸 하나 주체 못하고 고꾸라진 게 미안해지는 때. 누군가 염치 좋게 거드네요. "누가 다 치웠데요?" 쥔장 잔소리 시작됩니다. "말도 마... 누룽지 준비는 또 어떻고..." 반성하는 아침, 명이김치는 언제 먹어도 최곱니다.
곽경숙 조합원 칭찬이 이어집니다. 그인 어머니의 손맛을 익혔다(타고났거나)고 했습니다. 품성까지 닮은 것이겠죠. "어머니가 늘 맛난 요리를 해놓고 여기저기 이웃들을 불러 대접하는 걸 즐기셨어요. 그래서 저도 그게 당연하다고 여기고..." 여생 행사 때 이 분 나타나면 모두가 반기죠. 호사, 왜 마다하겠습니까.
아침을 먹곤 응향원 뒤뜰 머위 뜯기에 나섰습니다. 지천에 널렸습니다. 쑥, 머위, 고들빼기... 때 놓친 냉이 말고도. 기자는 밀린 일이 있어 잠시 인터넷과 씨름을 하고. 다시 밖이 시끌벅적하다 싶더니 나물 봉지 하나씩을 들고 들어옵니다. 그리곤 도자기 전시실과 공방 구경 가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