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으로 농업과 축산업이 위기에 몰린다는 <조선일보> 보도.
조선일보
한국의 기자들이 고위 정치인들과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는지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기자들이 고르고 추린 내용만 간략히 보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간담회는 대화내용 전문이 공개됨으로써, 한국의 고질적인 '적폐'인정-정언 유착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을 만난 뒤 한국 언론은 '김영란법'에 대한 '우려'나 '공직자 골프 자유화' 관련 발언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물론 이 발언의 출처는 모두 대통령으로, 언론은 그의 말을 직접인용하며 상세히 보도했다. <미디어오늘>이 공개한 간담회 내용은, 그 발언의 주역들이 언론사 간부들임을 보여준다. 한국 정치권과 언론의 범상치 않은 관계는 연합뉴스 편집국장의 '건배사'에서부터 드러난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대한민국은 이제 더 풍요롭고 더 합리적이고 더 품격 있는 나라로 도약해야 합니다. 국정의 중심에 계시는 대통령께서 대한민국을 업그레이드 하시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건배사는 아주 상투적인 것을 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로 하겠습니다. 제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하면 '위하여'라고 하고 복창해 주십시오. 앞에 놓인 주스 잔 들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웃고 담소하는 와중에도 권력과 언론은 서늘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어진 다른 언론사 기자의 발언은 그들이 '감시자'보다 '공모자'에 가깝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과거 대통령이 했던 '골프칠 시간 있느냐'는 말을 오해하는 사람이 많아 "국내 내수를 촉진시킬 것이 해외 골프로 나가고 이런 부작용도 연출되고 있다"며, 대통령에게 '골프쳐도 좋다'는 점을 분명히해 줄 수 있냐고 요구했다.
대통령의 '골프 OK' 발언은 이 '질문'의 대답으로 나왔다. 대통령은 "내수 살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하겠다 생각한다"며, '골프를 칠 시간이 있느냐' 하는 발언이 골프 금지령으로 해석된 데 대해 "확대 해석할 필요도 없다. 앞으로 내가 말조심을 더 해야겠다"고 까지 말했다. 한국 언론은 이런 데서는 대통령의 사과까지 받아낼 만큼 용감무쌍했던 셈이다. 김영란법에 대한 대통령의 '우려'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도 기자들이었다.
"법률명은 깁니다마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에 관한 법, 김영란법입니다. 국회가 만들었습니다마는 9월 말에 시행이 될 텐데 법의 취지 또는 위헌성 여부는 차치하고 법이 시행될 경우에 경제를 위축시킬 우려가 큽니다. 우려가 상당 부분 나타나서 한우축산농가라든지 화훼농가, 과일 재배하는 사람들, 식당 이런 사람들이 내수경기 위축은 물론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내고 실제 건의를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혹시 김영란법이 경제에 미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 혹시 우려 갖고 계신 것은 아닌지 여쭙고 싶습니다."김영란법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준 한국 언론연습이라도 한 듯 척척 아귀가 맞는 대통령과 기자들의 문답은, 우리나라에 '김영란법'이 꼭 필요한 이유를 역으로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직후 '김영란법의 조속한 원안통과'를 국회에 주문했었다. 세월호 참사가 돈, 선물, 식사대접으로 매개된 공직자-업자 사이의 '따뜻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대통령까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경제를 위해' 세월호를 잊기를 요구하더니, 이제 다시 '경제를 위해' 부패의 고리를 용인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이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다시 정부와 언론이 손잡고 나섰다.
대통령은 '공짜점심은 없다'는 말을 즐겨 쓴다. 생각해 보라. 왜 친구와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밥을 사고, 갈비를 보내고, 골프비를 내주는가?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경제에 대한 우려가 아니라 '불의의 공모'의 끈질긴 생명력이다. 이 사실은 기자들이 청와대에서 얻어 먹은 밥이 3만 원짜리가 아니라 3천 원 짜리였어도 마찬가지다.
한편, 국민권익위원회는 오늘(24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령 입법예고안에 대한 공청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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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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