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초등학생 시신 훼손사건' 피의자인 부모 중 아버지가 포승줄에 묶이고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지난 21일 오전 전 거주지인 부천시 원미구 한 빌라에서 현장검증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권우성
"뉴스 보기가 겁나, 하루하루가 생지옥이야. 어떻게 제 자식을 저럴 수 있냐고?"밥상머리에서 뉴스를 보던 아내가 화들짝 놀라며 급하게 TV를 끈다. 경기도 광주에서 40대 가장이 아들과 딸, 아내를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 우울증이 원인이란다. 숟가락을 들던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말없이 서로의 시선을 피한다. 고등학생인 딸은 저 뉴스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침 밥상머리에 찾아든 침묵. 가장인 나는 우울한 침묵을 어떻게 깨야할지 고민스럽다.
온 나라가 우울증에 걸렸다, 하루가 멀다않고 터져 나오는 잔악한 가족 범죄와 수많은 자살, 노인들의 고독사. 그 때마다 우울증이라는 진단이 처방전처럼 따라 붙는다. 그러나 뉴스는 매번 여기까지다.
우울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려 하지 않는다. 이들의 죽음을 연결하려고도, 공통의 분모가 무엇인지도 관심 밖이다. 자살과 가족 잔혹사. 매일이다시피 일어나지만 그때마다 개별적이다. 작은 나뭇가지 하나 부러져 나간 것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 뿌리가 썩고 기둥이 무너질 전조라고 말하지 않는다. 모르는 게 아니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온 나라가 우울증에 걸렸다끔찍한 가족 잔혹 범죄가 발생하면 수많은 언론과 경찰 당국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엉킨 가정사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채무를 뒤지고 약봉지를 추적해서 병력을 쫒는다. 과다한 채무는 개인의 일탈로 돌려버린다. 2014년 11월 아이를 포함한 일가족 사망사건이 대표적이다.
9억 원이 넘는 빚은 가장의 경매과욕이 불러온 참극이라고 경찰과 언론이 입을 모았다. 그러나 '집사서 부자 돼라'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참극의 공범이라는 건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신병비관, 우울증, 불면증. 가족 범죄와 자살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이 역시도 개인의 일탈로 다뤄질 뿐 사회적 병폐에서 원인을 찾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하루에 38번씩이나 일어나는 자살과 수시로 되풀이되는 가족 범죄. 대부분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렸으니 제대로 된 정치·사회적 대책도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일탈, 우울증, 불면증, 신병비관의 개인사 아래에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가 오물처럼 고여 있다.
노동으로 지탱할 수 없는 가정경제. 희망보다는 절망이 엄습한 미래. 흙수저와 금수저의 경계가 점점 더 높아지는 현실. 이런 사회적 환경에 발 담그고 살 수밖에 없기에 일탈과 불면증·우울증·개인비관이 늘어가는 것이고, 11년째 OECD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가정에서 벌어진 잔혹한 사건은 건강하지 못한 사회의 투영이다.
자살이나 가정에서 벌어진 잔혹한 사건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정치·사회적 문제와 상관없는 범죄나 죽음들도 있다. 하지만 헬조선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고립과 사회적 소외 등이 자살을 부추기고 가정 범죄의 원인이 된 것도 사실이다.
먹고 살기 힘들고, 아무런 희망도 안겨주지 못하는 사회. 정부는 이 점에서 만큼은 가해자다. 대통령을 위시한 정치인들을 일방적으로 살인자라 불러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들의 편협하고 일방적인 정치적 판단으로 많은 국민들이 일탈, 신병비관, 우울증, 불면증을 겪고 있다면, '정책 살인'이라는 비난은 유효하다.
두 대통령 신년 담화, 너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