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월 2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모든 민주국가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이 한 말이다. 언젠가부터 이 인용구가 한국사회에서 진리처럼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이 사실일까?
한국은 '정부'라고 할 것도 없이, 대통령 개인의 뜻이 한 치 오차도 없이 실현되는 나라이니, '정부'를 그냥 '대통령'으로 바꿔도 좋겠다. 어쩌면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내세웠던 구호,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가 이것을 염두에 두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토크빌의 말대로라면, 우리 국민 수준이 박근혜 대통령 수준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
'지도자 수준이 곧 국민 수준'이라는 말이 우리 자신에게 모욕이 될지 칭찬이 될지 모르겠으나, 토크빌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이 말이 '선출된 독재'를 정당화하는 데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민주적 절차를 통해 집권한 지도자라 하더라도, 그가 위임받은 권력을 국민의 뜻과 어긋나게 악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우리는 그저 '국민 수준이 낮아서 그런 지도자를 뽑았으니 별수 없다'며 넋 놓고 있어야 할까?
게다가 토크빌의 말이 꼭 옳은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한국 국민은 지난 3년간 대통령과 지속해서 '다른 수준'의 사고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최근 이슈만 해도 그렇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국민이 반대했고, '복면 금지법'에 대해서도 더 많은 국민이 반대하고 있다.
그뿐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 대회를 '테러'로 비난하면서 '노동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다. 우리 국민은 대통령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히려 국민 대다수는 노동개혁안을 '재앙'으로 보고 있다. 전국의 시민들 7만여 명에게 투표로 의견을 물은 결과, 무려 96%가 '개혁'이 아니라 '재앙'이라고 답한 것이다. 이래도 우리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수준이란 말인가?
토크빌이 경험하지 못한 한국의 독과점 언론 토크빌을 한국사회에 적용할 수 없는 이유가 또 있다. 바로 토크빌이 보지도, 듣지도 못했을 '독과점 언론'이 그것이다. 토크빌은 19세기 초에 태어나 19세기 중반까지 살았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 언론 환경은 지금과 크게 달랐다.
당시는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없던 시대였으니 신문과 잡지만이 유일한 매체였다. 여기에, 소수가 다수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대 언론 기업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한 언론사가 신문과 방송은 물론, 인터넷과 옥외 광고판까지 손에 쥐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토크빌이 살았던 당시 저널리즘은 '당파언론'에 가까웠다. 언론은 '중립보도'를 자임하지 않았고, 각기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후원하면서 그들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았다. '막장언론'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당시는 모든 매체가 영세했고 영향력도 모두 고만고만했기에, 지금과 같은 여론 독과점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많은 매체가 비슷한 크기의 목소리로 독자들에게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는 순기능도 있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에 언론의 '중립보도'가 정착되기 시작했지만, 불행히도 같은 시기에 언론활동을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삼는 '언론기업'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늘날 언론은 '중립'을 표방하고 많은 독자도 그렇게 믿지만, 사실은 자본권력이나 정치권력과 결탁해 국민의 판단을 교묘하게 조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한국 국민 대다수가 노동 개악에 반대한다는 '을들의 투표' 결과는 무척 놀랍다. 이제 한국 사회는 상식적으로 사고하기조차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신료와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은 정부 홍보 매체가 된 지 오래고,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언론은 일간지뿐 아니라, 종편 방송사마저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심사 과정을 통해) 무더기 방송허가를 얻은 종편은, 듣기 민망한 수준의 억지와 막말을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내보내고 있다. 본래 '막말'이라는 게 정보로서의 가치는 없어도 원초적 흥미는 자극하는 법이라, 가정집 거실·식당·버스 터미널 등에서 '생각 없이 켜놓는 방송'으로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노동자와 '헝그리 정신 부족' 탓하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