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오얀타 우말루 페루 대통령이 20일 오전(현지시간) 페루 대통령궁에서 단독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15.4.21
연합뉴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황교안 총리 후보를 내세운 후 '최악의 공안총리'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대통령은 임명 직후 미국으로 떠나려 했다. 하지만 메르스 전국 확산으로 반대여론이 들끓자 대통령은 울며 겨자먹기로 순방 계획을 미뤘다.
많은 이들이 대통령의 방미 취소 결정을 반겼고,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통령이 '아껴놓은 여행'은 언제 터질지 모를 불발탄처럼 내 마음을 짓눌렀다. 떠나면서 또 '큰 놈' 하나를 터뜨릴 테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에서 대통령이 '나간다'는 사실이 보도되기 시작했고, 내 마음속에는 근심의 먹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짙은 두려움을 뚫고 '국정교과서'라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박 대통령의 선임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민이 반대해도 일단 저질러 놓으면 나중에 좋아한다'는 기이한 통치철학을 현 정부에 각인시켜 놓은 지도자였다. 반대 여론이 거셀 때 대처하는 법도 알려주었다.
"소나기가 오면 피해야 한다." 잠시 눈치 보며 살피다가 빗줄기가 잦아들면 다시 '저지르기 모드'로 복귀하는 한편, 경찰과 검찰을 풀어 정부에 반대한 국민들을 야금야금, 그러나 끈질기게 손보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통치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그는 소나기를 피하는 법을 알 뿐 아니라, 소나기를 피하기 좋은 곳이 외국이라는 사실까지 아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완전히 도사급이 되어, 기우제까지 지내놓고 사뿐히 비행기에 오르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제 허수아비 여당과 관료들이 '행동대장'으로 나설 차례고, 그 뒷감당은 박복한 국민들 몫이다. 대통령은 고운 옷에 화사한 웃음으로 해외 정상을 만나고, 그를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은 동반자가 되어 정상회담을 칭송할 언어를 찾기 바쁘다. 어느 모로 봐도 '정상'이 아니다.
국정화 발표 당일 불거진 재앙들황우여 교육부장관이 '국정화'를 선언한 12일 바로 그 날, 두 개의 뉴스가 언론에 슬그머니 등장했다 사라졌다. 하나는 한국노동연구원 발로 보도된 청년 고용난 소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2015년 세계 노인복지 지표'(GAWI)가 드러낸 한국 노인들의 형편없는 복지 수준이었다.
이에 따르면, '청년 신규채용은 10년 새 10만 명 감소했고, 일자리 질 악화는 더욱 심각'하며, 한국의 노인복지 지표는 100점 만점에 44점을 기록해, 베트남이나 필리핀보다 낮았다. 더 한심한 것은, 50위에서 60위로 떨어져 일 년동안 무려 10계단이나 추락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이런 위급한 시기에 대통령과 여당이 '한가하게' 교과서 타령이나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것은 대통령이 임기 절반이 지나도록 (제 1공약이었던) '일자리와 복지'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며, 나머지 임기 동안도 지킬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해결하지 못한 '먹고사는 문제'를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덮는 것, 이것이 '교과서 트집 잡기'의 핵심이다.
'다시 잘 살아보세'를 내세워 집권하고 나서 이제 와서 '이제까지 쭉- 잘 살아왔네'라고 말하는 셈이다. 교과서 국정화는 이명박 정부 이래로 끈질기게 추진되어 온 '여론 길들이기'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한다. 지난 정부는 '무더기 종편 허용'과 '공영방송 국영화'를 통한 언론 우경화 작업에 나섰고, 덕분에 참담한 실패 뒤에도 재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다.
현 정부는 다시 권력 재창출을 위해 '포털 길들이기'와 '카카오 감청' 작업을 마무리하고, 뒤이어 '교과서 손보기'에 나섰다. 앞의 것이 '유권자 눈·귀·입 가리기' 시도라면, 뒤의 것은 '집권용 조기교육'에 해당할 것이다.
'우익 교과서 막겠다'는 공안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