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경남지사.
윤성효
4월 1일, 경남지역에서 무상급식이 전면 중단됐다. 이번 결정이 홍준표 도지사의 대권행보를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는 진단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다.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야당의 무상급식 정책에 정면 대응함으로써 대권가도의 발판을 놓으려 했듯, 홍준표 도지사는 오세훈 전 시장이 넘지 못한 벽을 넘어 보란 듯이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대선 주자로서의 존재감을 부각하려는 의도다.
경남지역의 무상급식 중단 논란이 전국에 확산되고 있으니, 최소한 '이슈화'와 '존재감' 전략은 들어맞았다. 그러나 이것이 긍정적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리얼미터>의 3월 4주차(23일~27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홍준표 지사는 대선후보군 중에서 7.1%의 지지도를 기록해 두 계단 내려앉은 5위를 기록했다.
여론도 홍 지사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리서치뷰>가 인터넷방송 <팩트TV>와 함께 지난달 3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무상급식 중단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반대의견이 54.7%로, 찬성의견인 36%보다 18.8%가 높게 나왔다. 당장 무상급식 중단에 직면한 경남지역을 포함한 부산, 울산 지역의 반대의견은 59.8%다.
반면, 새누리당 지지층에서는 무상급식 중단 찬성의견이 73.8%를 기록했고, 전형적인 새누리당 지지연령대인 50대와 60대에서는 무상급식 중단 찬성 여론(각각 51.1%, 61.8%)이 더 높게 나왔다. 이런 조사결과는 보수층이 무상급식을 매우 정치적인 의제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자급식 막겠다는 정책, 서민들이 반대?무상급식 중단에 대한 복잡한 정치논리를 걷어내면, 표면적 명분은 "우리가 돈도 없는데, 왜 이건희 손자 밥값까지 국민 세금으로 내줘야 하나?"는 것이다. 경남도청은 무상급식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면서 '우리나라 소득 상위 10%가 전체소득의 44.87%를 차지하며 이는 OECD 19개 국가 중 빈부격차 2위의 성적'이라는 내용도 함께 제시했다. 빈부격차가 이렇게 큰데도 부자들에게까지 무상급식을 제공함으로써 서민들에게 돌아갈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는 뉘앙스다.
이런 주장에 반대할 논리는 딱히 없다. '밥은 공평하다' 따위의 대응이 양극화 시대의 상대적 박탈감에 찌들고 팍팍한 살림살이를 겨우 이겨내고 있는 서민들에게 공감을 받기는 힘들다. "돈도 없다면서 왜 여유 넘치는 부유층의 밥값까지 공짜로 줘야 하나?" "있는 집 사람들은 스스로 급식비를 내겠다는데, 이걸 굳이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나?"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사실 서구 복지국가에서 보편적 복지가 제기된 이유는 복지확충에 필요한 재원을 감당할 고소득층과 중산층의 조세저항을 완화하기 위해서였지, 공평의 가치를 실현하거나 서민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부자들과 중산층에게 걷은 세금을 저소득층에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혜택을 골고루 나눔으로써, 사회 안정망 확충을 위한 예산에 필요한 증세 조치에 대한 반발을 줄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주로 부자들의 입장을 대변해 왔던 정치세력이 스스로 앞장서서 부자들에게 주던 혜택을 중단하고 이를 서민에게 돌리자고 제안한다면, 반대할 이유는 없다. 적지 않은 서민층 국민들이 무상급식 취소에 공감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좌파와는 거리가 한참 먼 도지사가 직접 나서서 이건희 손자에게 굳이 급식비를 걷고자 한다면, 굳이 이걸 막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들에게 들어갈 급식비를 서민 지원으로 돌리면, 더 좋은 일 아닌가?
그런데 경상남도의 움직임은 요상하다. 무상급식 폐지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봐도 이건희 급 학부모처럼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정말 경남도청의 주장처럼 "종북세력을 포함한 반사회적 정치집단"의 공작 때문일까?
국민 80%를 이건희 급 학부모로 대우하는 도지사서민을 위한 홍준표 도지사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의심하는 불경스러운 짓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바로 그 서민들이 홍 지사의 정책을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앞뒤가 맞지 않은 정책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홍 지사가 생각하는 '부자'의 범위가 도대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경남지역은 한 반에 '이건희 손자'급 학생들이 몇 명이나 되는가? 한국사회의 양극화가 점차 심각해지면서 돈이 돈을 버는 시대가 되었지만, 이건희 손자급의 소득수준을 가진 이들은 한 반에 1~2명을 넘을 리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건희 손자에게는 밥값을 걷자"라고 주장한다면, 저소득층 아이들의 '가난'을 증명하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고소득의 '부유함'을 증명토록 해야 한다.
즉, 소득수준을 증명해야 할 것은 하위 10%의 아이들이 아니라 상위 1~10%의 아이들이다. 고소득층이 아닌데도 고소득층으로 분류되어 급식비를 내야 하는 가정이 있다면, 이를 증명하도록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부자급식을 막겠다면서 실제로는 급식비 지원을 모두 중단해 버린 결정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경남도청의 주장처럼 국가에서는 이미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가족보호대상자, 최저생계비 130% 이하 저소득층 자녀에게 급식비를 지원하고 있다. 도에서 무상급식 대신 지원하겠다는 서민자녀 교육지원사업 역시 대상인원이 10만 명으로 전체학생의 약 24% 정도다.
그렇다면 결국 홍준표 도지사가 중단키로 한 부자급식의 대상은 이들을 제외한 모든 학생이다. 경상남도에는 모두 이건희 손자급 부자만 살거나, 그게 아니라면 홍 지사가 취소한 급식은 부자급식이 아니라 서민급식이었다는 말이다.
왜 새누리당은 누진적 직접세 확대 찬성 안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