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여성가구 협동조합인 '그리다 협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이 9일 오후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카페인 서울 마포구 '어슬렁 정거장'에 모여 지난해 발간한 <1인용 행복> 창간호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 잡지는 1인 여성가구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혼자 사는 데 필요한 유용한 정보나 경험을 공유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왼쪽부터 신치, 반다, 여진
유성호
궁상맞은 독신 vs. 화려한 싱글. 한국 사회에서 1인가구를 바라보는 양 극단의 이미지다. 결혼도 '못한 채' 인스턴트 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며 외로움에 몸서리치거나,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좋은 집에서 럭셔리한 차를 몰며 자유로운 싱글라이프를 즐기거나. 혼자 살지 않는 사람들은 혼자 사는 이들의 삶을 마음대로 판단하고 낙인찍는다. 미디어 속에서 재현되는 혼자 사는 이들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노명우 교수는 자신의 책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혼자 사는 이들에 대한 상상적인 관념을 '싱글리즘'이라고 부른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상상적인 관념 체계인 '오리엔탈리즘'에 빗댄 것이다.
"혼자 살지 않는 사람들은 혼자 사는 사람조차 낯설어하는 상상적 이미지를 혼자 사는 사람에 관해서 만들어내고, 이 이미지에 따라 혼자 사는 사람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판단하고 참견하고 간섭하고 조언한다."(<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중에서)여기, 혼자 사는 30~40대 여성 4명이 있다. 1인가구로 산 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8년이 된 이도 있다. 이들은 1인 여성가구 협동조합인 '그리다 협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혼자 그리고 더불어 사는 여성들의 잡지'를 표방하는 <1인용 행복>을 함께 펴내기도 했다. 지난 9일, 궁상맞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유쾌한 '언니들'을 만나 수다를 떨었다. 좌담회는 그리다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카페 '어슬렁 정거장'에서 진행됐다.
혼자 살아본다는 것 - 자기소개를 해 달라. 여진 : "그리다 협동조합 상근이다. 이전에는 여성민우회에서 활동했다. 그리다 협동조합 조합원 교육, 프로그램 기획을 맡으면서 그리다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카페인 '어슬렁 정거장'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엄마 집에서 독립해 혼자 살고 있다."
반다 : "지금 공식적으로는 휴직 중이고, 사회단체에서 활동했다. 스무 살에 독립해서 혼자 산 지는 올해로 19년 차다."
신치 : "<1인용 행복> 잡지를 만들 때는 그리다 협동조합에서 같이 일을 하고 있었고, 지금은 '장애인 문화예술 판'에서 일하고 있다. 스무 살부터 혼자 살다가 가족이랑 살았다가 또다시 독립했다."
강위 : "모 출판사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저도 스무 살에 부모님으로부터 나와 살았는데 언니나 친구하고 살다가, 혼자 산 지는 8년 됐다."
- 혼자 사는 이유는? 강위 : "살다보니….(웃음) 가장 크게, 저는 대학을 가면서 부모님이랑 사는 지역이 달라졌다. 그 이후에 학업을 마치고 내가 사는 공간을 선택했을 때 그 당시에 저랑 같이 살고 싶은 사람이 없었다. 그게 친구든 애인이든 가족이든.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서 다른 사람이랑 살지 않겠다는 게 선택일 수는 있는데, 너무 혼자살고 싶다거나 싱글라이프를 꿈꾼 건 아니었다."
반다 : "저는 혼자 사는 게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다. 저희 집이 3대가 같이 사는 대가족이었다. 8명이 같이 살았다. 직계가족 이외에도 친인척들이 우리 집에 와서 사는 경우도 있었고. 10대 때 빨리 독립하는 게 꿈이었다. 스무 살에 대학가고 독립하면서 혼자 살다가 20대 중반에는 여성운동 하는 친구들이랑 공동체처럼 같이 살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또 혼자 살다가 애인이랑 살다가…. 최근에는 하우스 메이트와 함께 살고 있다."
신치 : "'여진'은 <1인용 행복> 작업을 하던 중에 독립했다."
여진 : "'임대'가 당첨이 돼서….(웃음) 혼자 살아보니까 느끼는 게 뭐냐면, 같이 잘살려면 혼자 사는 경험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자기 삶을 리드해나갈 수 있는 훈련의 경험. 혼자 살다가 다른 사람과 함께 살 수도 있는데, 그때도 혼자 살아보는 경험은 중요하고….(반다가 웃자) 왜 웃어?"
반다 : "아니, 가장 최근에 독립 몇 달차인데….(웃음)"
여진 : "그런 거 많이 느낀다. 공동체가 성숙하려면 혼자 살아봐야 한다."
강위 : "개인적인 이야기일 수 있는데 혼자 살아본 경험이 있는 애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삶의 태도가 다르지 않나? 혼자 안 살아본 사람들은 손이 너무 간다.(일동 웃음) 누군가가 다 해주기 때문에. 제 친구가 결혼했는데 남편이 화장실의 불은 혼자 꺼진다는 걸 알았다고 하는 걸 보고.(웃음)"
반다 : "어느 자료에서 봤는데, 혼자 살아본 경험이 있는 남성은 맞벌이 부부가 됐을 때 훨씬 가사분담을 잘한다고 하더라. 우리 사회에서 한 인간이 개인으로 살아가는 경험은 최근의 일이다. 계속 혈연가족 안에 있다가 결혼을 통해 다른 가족을 구성하게 되면, 집단을 이동하는 형태였으니까. 1인가구가 많아지고 이렇게 이슈가 된 건 최근이다. 1인가구가 많아지면서 개인으로서의 경험 평균치가 사회적으로 확 올라가지 않을까. 평균적인 자기 돌봄 능력도 올라갈 것 같다."
신치 : "독립을 하겠다고 엄포를 놨을 때 엄마가 코웃음 치면서 그러더라. '니가 돈도 제대로 못 벌면서 과연 나가서 혼자 살 수 있겠냐, 나가보면 지금처럼 (집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세금 하나 안 낸 걸 고마워 할 거다.' 그런데 나와서 살면서 내 재정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같다. 마이너스 때문에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편하겠다' '외롭지?'... 왜 다 안다고 생각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