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와 박스를 든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 회원들이 9월 28일 오후 서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참사 추모 노란리본 강제철거를 시도하며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권우성
인권활동가들은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를 꾸려 활동을 만들어가고 있다. 존엄과 안전위원회는 자유팀, 평등팀, 안전대안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평등팀은 '평등한 애도, 평등한 지원'을 중심에 두고 세월호와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 생존자, 화물기사들, 이주민, 민간 잠수사 유가족과 동료 잠수사들, 진도어민…. 시간은 점점 4월 16일에서 멀어졌지만 그들은 계속 그날에 남아 그 기억들을 되새기고 있었다.
세월호에는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타고 있었다. 또 제주에서 새 삶을 꿈꾸며 이사하던 50대 부부가 있었고, 그 부부가 키우던 강아지를 옆에서 보고 같이 놀던 5살짜리 꼬마 아이와 그 가족들이 타고 있었다.
몇 년간 제대로 된 휴일도 없이 격무에 시달리다 연인과 함께 제주 여행을 계획한 재중동포도 있었고, 배 안의 커피숍과 식당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다 나열하려면 304줄의 문장으로도 모자랄,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소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누구를, 또 무엇을 잊지 않겠습니까?"에 대한 대답 그런데 어느 순간 단원고 대 일반인 희생자로, 내국인 대 이주민으로, 청소년 대 어른으로, 마치 '더' 슬픈 죽음이 있고 '덜' 슬픈 죽음이 있다는 듯이 모함하는 세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모든 순간 '국가'는 그 존재를 감추어버렸다. 가장 책임져야 할 주체들은 사라지고, 이제는 '세월호 유가족과 세월호를 기억하며 진상규명에 힘쓰는 사람들' 대 '일반 국민'으로 나눠놓는다.
어떤 이들은 세월호 피로감을 들먹이며 이제 그만 잊으라고, 그만 하면 됐다고 악다구니를 쓴다. 이는 서북청년단이 재건되어 세월호 농성장을 찾아오는 것으로, 어버이연합과 같은 보수혐오세력의 난동으로 그 추악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일반인' 희생자 가족들은 "죽음 앞에서는 다 똑같은 슬픔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사고 직후 가장 먼저 자신의 배를 갖다 대어 탑승객들을 구조하고, 이후에는 생업을 중단하고 희생자들을 수습하는 일을 한 진도 어민들은 매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그것은 1년 총 예산 약 4조 원 중 구조·구난에 쓰이는 예산이 4억여 원에 불과하다는 해경을 대신해 수중 수색작업을 진행한 민간 잠수사들도 마찬가지다.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화물기사들은 운전을 하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정부는 화물차를 잃은 이들이 다시 화물차를 살 수 있도록 1%대 저금리 대출을 해주겠다는 것을 지원 방안으로 내놓았다.
나는 이것이 4·16 존엄과 안전에 관한 인권선언(이하 4·16 인권선언)이 꼭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지난 12월 10일 4·16 인권선언 추진대회에서 "우리는 우리가 누려야 할 권리들을 사전에서 찾지 않습니다. 재난과 참사를 겪은 당사자들과 함께한 이들의 경험에서 찾을 것입니다"라는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4·16 인권선언에는 이러한 경험들이 구체적인 권리가 돼 하나하나 담길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대부분의 국민들은 반드시 무언가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바뀌어야 하는지는 이러한 경험들 속에서 나올 것이다.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건너편에 있는 혐오세력들을 보면서, 우리에게 모욕당하지 않고 애도하고 기억할 권리가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헤아리게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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