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밭예전에는 메밀꽃밭이 그리 넓지 않았다고 하는데 관광지화가 된 뒤로는 여기저기 넓게 펼쳐진 메밀꽃을 볼 수 있게 됐다.
류효정
하지만 이 불행이 그에게는 행운이었다. 경성에서 그는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 취직해 경제적 안정을 찾았고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을 재인식함으로써 문학의 전환점을 맞았다. 또한 백계 러시아 피난민들이 머물렀던 주을온천에서의 경험을 통해 본격적으로 서양 문명에 젖은 생활을 시작했고 이를 작품에 형상화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시절의 경험이 그에게 '고향'을 되돌려주었다는 점이다. "나는 자주 관북의 경성과 부근 이야기를 지금까지 썼으나 살고 있는 당시의 일종의 고향의 느낌을 그곳에서 발견하였기 때문일 뿐이다"라고 수필 <영서의 기억>에서 고백하고 있거니와 경성 생활 이후 그는 자신의 고향인 강원도를 작품 속에 담기 시작한다.
이후 경성 생활을 접고 그는 1936년 평양으로 이주하여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취임한다. 평양 창전리 '푸른집'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 중 가장 윤택한 때를 보내며 활발한 창작활동을 한다. 그리고 이때 <메밀꽃 필 무렵>을 비롯하여 자신의 고향인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 몇몇 작품을 발표한다.
즉, 그는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10여 년이 지난 서른 즈음이 되어서야 고향과 아버지를 마주하고 이를 작품으로 형상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메밀꽃 필 무렵>에 투영된 이효석의 삶<메밀꽃 필 무렵>은 하나하나의 요소들이 완벽한 짜임새를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묘사의 정점을 보여주는 표현력으로 인해 한층 빛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