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경찰청은 성폭력 근절과 피해자 보호 전문화를 위해 '성폭력 전담수사팀'을 신설했다.
조정훈
가해자가 술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음을 감안해 형을 감경해주던 '음주감경'의 경우를 보자. 여성단체들은 성폭력 가해자들이 음주를 핑계로 가벼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수차례 문제제기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2008년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폐지되었다.
당시 법원은 초등학생 여아를 잔인하게 성폭행한 조두순에 '범행 당시 술에 취해 온전한 정신상태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형량을 징역 12년으로 낮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것이 '조두순법'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이 법은 '성폭력범죄의 공소시효를 연장하고, 심신장애 감경 조항을 엄격하게 적용하며, 성폭력 피해자가 미성년자일 경우 피해자가 성년이 될 때까지 공소시효 진행이 정지되는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성폭력 피해 당사자의 명예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피해 당사자만 고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 '친고죄'도 그렇다. 친고죄는 피해자가 고소할 수 있는 기간이 1년에 불과했고,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하면 없었던 일이 될 수 있는 조항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나 가족이 합의를 요구하며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피해자가 합의금을 노리고 고소를 제기한 것으로 몰아가는 등의 피해를 줬다. 이런 이유로 지난 2013년 폐지되었다.
또 피해자가 수사 과정이나 사법 절차 상에서 사생활이나 성 경험과 같은 모욕적인 질문을 받는다든지, 꽃뱀이라는 의심을 받는 등 형사 사법절차 상에서의 2차 피해가 지속적으로 문제되자 이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 피해자 국선변호사제도, 증인지원관 제도, 진술조력인제도 등이 도입되었다.
피해자가 상담이나 사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센터나 상담소, 쉼터 등이 확충되었고 피해자와 그 가족의 의료비 지원제도도 마련되었다.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성폭력특별법 제정 이래 성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정책 체계의 큰 틀이 갖추어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성폭력특별법 20년, 성폭력을 대하는 시선들
그러나 이런 변화의 이면에는, 성범죄 형량이 대폭 강화되면서 판사들의 심리적 부담만 가중시켜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성폭력 범죄에 유죄 판결을 내리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문제제기도 있다. 그런가하면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잔인한 성범죄에 대한 대중들의 들끓는 여론을 달래기 위한 대응도 적지 않았다. 제도의 효과성이나 사회적 숙의가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은 채 전자발찌, 화학적 거세, 신상정보공개, 유전자정보 집적 등의 제도들도 신속하게 도입되었다.
성폭력 예방과 근절이라는 대의에 찬성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제도의 비용대비 효과성이나 인권침해 논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성폭력 관련 가해자 대책은 인권침해 소지가 있어도 여론의 문제제기가 크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도입되고 다른 범죄자 대책으로도 확장된다.
신상정보 공개 대상을 제도 도입 이전의 범죄자에게까지 소급적용한다거나 전자발찌 착용 대상을 성폭력 범죄자뿐만 아니라 강도범에게까지 확대한 것이 그 예이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보호수용제도 유사하다. 성폭력에 대한 국민 불안이 크니 3범 이상의 성폭력 범죄자나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폭력범은 형기 종료 후 최대 7년까지 보호수용하겠다는 법을 최근 법무부가 입법예고했다.
인권침해를 이유로 폐지되었던 보호감호제와 유사한 이중처벌 논란이 있는 보호수용제를 도입하겠다는 법무부의 논리는 성폭력이라는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또 다른 인권침해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성폭력특별법은 제정 이후 지난 20여 년 동안 스무 번도 넘게 개정되었다. 법 개정을 통한 수많은 제도적 변화가 이뤄진 현 시점에서 우리 사회가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해졌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앞서가는 법 제도를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간 성폭력 범죄의 양형이 재판부에 따라 들쭉날쭉이라는 비판이 일자, 법원은 양형을 정비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성폭력은 판단하는 사람이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