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3월 2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우리가 성장을 해야 되는데 규제라는 암을 같이 안고 사는 것은 나라는 발전시키지 못하는 것.""(규제개혁을 위해) 사생결단하고 붙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제5차 무역투자진흥회의 및 지역발전위원회 연석회의(2014. 3. 12)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개혁 끝장토론'에서 규제혁파를 국정 핵심과제로 선정했다. 모든 규제를 비용으로 환산하여 새로운 규제를 신설할 때는 기존 규제를 반드시 폐지하도록 함으로써 총량을 유지하고, 각 부처별로 규제 총량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도록 하여 국정과제 수행평가에 반영하는 이른바 '규제비용 총량제'를 내년부터 전면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각 부처별로 앞 다투어 규제를 폐지하기 시작했다. 규제완화를 부르짖는 최고정책결정자의 메시지가 해수부나 해경으로 하여금 해상안전 규제 강화에 관심을 갖도록 할 리는 만무했다. 세월호 참사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규정을 위반한 과적과 부실한 선박 안전 점검 및 승무원의 미숙한 선박운항이라 할 수 있겠지만, 사고 방지를 위한 선박안전 관련 규제들은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을 통해 대거 폐지 또는 완화되어왔다.
4월 24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선박·해운과 관련해 이미 완화되거나 완화가 진행 중인 안전규제는 20건을 웃돌았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6월, 내항선을 운항하는 선장에게 주어진 안전 관련 부적합 사항 보고 의무와 매년 실시하는 내부 심사를 폐지했고, 500t 이하 선박에 해당하는 '관리 외 선박'이 주로 드나드는 부두 등 항만 시설에 대해선 '해상교통안전진단'을 면제해줬다.
이는 규제개혁의 주무부처 핵심관료인 김동연 전 국무조정실장이 5월 21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의 제816회 수요정책포럼 강연에서 밝힌 내용으로도 확인된다. 당시 그는 '그래도 규제는 개혁되어야 한다'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세월호 침몰사고의 원인으로 과적, 적재방법, 감독 관리, 관피아, 초기대응 부실 등 여러 가지를 지적할 수 있으나, 규제 완화가 원인이라는 주장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밝히면서 "세월호 사고를 이유로 규제개혁의 불씨가 약해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안전규제를 비롯한 사회적 규제의 유지·강화정부는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규제완화 조치들에 대해 "규제완화가 아닌 규제개혁"이라고 해명한다. 규제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해명에 따르면,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개혁은 기업과 사용자의 부담은 줄이면서도 규제효과는 높인다. 대부분의 규제가 이러할까?
<서울경제> 4월 28일자 <청와대 "규제완화때 안전도 반영">에 따르면,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여 규제완화 시 안전에 대한 고려를 추가하겠다고 하였다. 규제완화 대상에 '안전항목'을 반드시 포함하고, 이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내에서는 규제개혁의 추진동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규제완화 정책을 큰 틀에서 그대로 추진하되 안전항목만 별도로 고려한다는 건 쉽지 않다. 규제완화 자체가 비용 절감, 자본의 이윤 추구를 위한 것인데, 안전 규제는 거의 모든 사안에서 그와 정반대의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제개혁의 방향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우선 모든 규제를 악으로 규정하는 인식과 접근은 규제개혁의 본질을 호도할 수 있으므로 바람직한 규제와 그렇지 않은 규제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공공성, 안전,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을 위한 규제는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동시에 더욱 강화해야 한다.
무분별한 규제개혁은 시민안전을 위협한다. 현재 박근혜 정부의 규제완화는 안전 관련 규제를 비롯해 환경, 의료, 교육, 노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전개되고 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 요구에 맞는 규제를 풀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논리는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를 강조했던 이명박 정부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 무분별한 규제완화는 국민의 생명이나 삶의 질에 재앙을 몰고 올 것이다. 이러한 무분별한 규제개혁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규제를 규제답게' 해야 한다. 아무리 규제를 강화한들 규제를 실행에 옮기는 관료와 그 구조가 혁신되지 않는 한 규제강화에 부정적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규제완화를 신봉하는 이들이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를 엄밀하게 나누는 것은 쉽지 않다. 경제적 규제와 사회적 규제도 실상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규제의 강화-완화를 논하기에 앞서 규제를 규제답게 만드는 새로운 틀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의 주장처럼 "관료적 규제에서 사회적 규제로", 그리고 "독과점적 규제에서 민주적 규제로" 전환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규제 강화-완화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규제를 사회화, 민주화하는 것이 규제를 규제답게 만드는 방안이다.
무분별한 규제개혁 중단 및 규제의 사회화·민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