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 특별법 제정 촉구하며 단식 돌입세월호 가족대책위 대표단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의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유성호
"막내아들이 중1인데 공부를 잘합니다. 시험 보고 와서는 '우리나라도 싫고 국어도 싫어서 국어시험을 안 봤어'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냥 쭉 찍어서 1개만 맞았다고 합니다. 왜 그랬냐고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세월호 참사로 떠난 단원고 2학년 학생 아버지의 말이다. 국어 답안지에 심술부리는 마음, 왜 그랬느냐 야단할 수 없는 마음들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가족 마음, 그 마음을 보는 국민도 이러지 않을까 싶어졌다.
2014년 4월 16일로부터 90여 일이 지났다. 오는 24일이면 100일이 된다. 진도 앞바다를 바라보던 충격적인 날로부터 속절없이 세고 있는 날짜들이다. 지인은 '자신과 무관한 타인의 일로 이렇게 오래도록 슬픈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분노조차 솟아오르지 않던 무기력은 어땠는가.
사실 나는 그랬다. 온갖 종류의 인권침해를 봐왔지만, 세월호 침몰은 왜 이렇게 눈물이 나던지…. 취임 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곱게 보이지 않았던 정부가 제대로 구조만 한다면 인간적 실망만은 거두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허망하기도 허망하여라.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살아 나온 이들의 증언은 같았다.
"우리는 구조된 것이 아니라 탈출한 것입니다."그러나 '구조에 전력을 다 하고 있다'는 거짓말이 공식 발표되었다. 공중파 방송을 통해서 전송되었다. 정부 여당 지도자들은 망언을 쏟아냈다. 분노에 찬 가족들이 진도 팽목항에서 걸어 청와대를 향했다. 다시 안산에서 청와대로, KBS 방송국으로…. 서명을 받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으로, 두 아버지는 안산 단원고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십자가를 메고 걷고 있다.
그조차 따라붙은 경찰은 가족들을 미행해서 물의를 빚었다. 국어 시험이 아니라 윤리 시험도 낙제인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13일 국회 본청 앞 기자회견에서 울부짖던 엄마는 "거지 같은 이 나라에서 떠나고 싶지만 죽은 내 새끼 놔두고 갈 수 없어, 여기 있다"고 말했다. 참혹한 시간이다.
단식 시작한 부모들... "죽는 한 있더라도 딸 원한 풀겠다"
14일 미지 아빠, 지성 엄마, 소영 엄마, 수진 아빠, 예은 아빠, 슬라브 엄마, 동수 아빠, 준우 아빠, 현우 아빠, 혜화 아빠, 빛나라 아빠, 준영 아빠, 창석 아빠, 예지 아빠, 유민 아빠가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국회 앞 노숙농성 이틀째, 아침부터 내리쬐는 험악한 뙤약볕 밑에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단식을 시작했다.
가족들은 대한변협, 국민대책회의와 함께 작성한 특별법을 통과시켜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세월호 사건 조사 및 보상에 대한 조속 입법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면서 가족들의 참관조차 거절했다. 가족은 "우리 가족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으니 특단의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며 단식농성의 입장을 밝혔다.
가족들이 요구하는 진상규명 특별법은 지금까지 법과 다르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특별위원회에 주자는 내용이다. 위원회 구성은 정치권이 참여하는 비율과 국민이 참여하는 비율을 동수로 하자는 것이다.
왜 그런지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참사 이후 수많은 시간을 실망과 무능, 의도된 조작과 거짓말로 버틴 정부와 정치권을 봐왔기 때문이다. 산이라도 옮겨줄 것처럼 약속했던 얼굴들이 모든 것은 내 책임이라고 말했던 눈물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다며 거리로 나섰던 손과 발들이 어떻게 가족들을 배신하고 국민들을 우롱했는지 겪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