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기다리겠습니다"1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범국민촛불행동집회에서 시민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희훈
딸이 있다. 열다섯 살, 중학교 2학년. 교복 입고 학교 간 지 이제 두 해가 되었다. 처음으로 슈퍼마켓에 혼자 가보겠다면서 뛰어가던 뒷모습이 엊그제 같다. "엄마, 나 다녀왔어." 돌아와 품 안으로 쏙 뛰어 들며 용맹하게 들썩이던 숨소리가 마치 조금 전 같은데 교복을 입었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4월 16일 이후, 괜찮지 않았다. 교복 입은 어린 탑승객들이 딸과 겹쳐 보였다. 툭 치기만 해도 눈물이 후드둑 떨어졌다. 버스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침대에 누워서도 그랬다. 한 아이의 15년, 뱃속에 간직한 순간까지 16년을 모조리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온 힘 다해 내 검지 손가락을 부여잡던 갓난아기 때, 백화점 바닥에 누워 엉엉 떼를 쓰던 순간, 고대하던 아이돌 콘서트에 다녀와서 흥분을 감추지 않고 떠들던 입, 엄마가 정말 밉다고 엉엉 울던 눈물까지 고스란히 침몰했음을 눈치를 챘다.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에게 더 이상 슬퍼하거나 기뻐하거나 싸울 수도 없는 단절의 순간이 왔다는 것이, 마치 내 일처럼 느껴졌나 보다. 6살 지호 엄마는 "모두 우리 지호만할 때가 있었겠지 싶어서 지호가 예쁠 때도 목이 멘다"고 말했다. 우리는 아마도 그래서, 세월호가 이렇게 슬픈가 보다.
가슴 아픈 이야기들... 가족들이 찾아나섰다슬픔이 넘쳐 진도 체육관, 팽목항, 안산 분향소, 그리고 전국 각지 분향소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누구는 미안하다고 했으며, 누구는 잊지 않겠다고 했다. 안산과 청계광장에서 밝혀진 촛불은 "끝까지 밝혀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사이에도 DNA가 아니면 가족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의 소식이 끝없이 들려 왔다. 마을 전체에 불 켜진 집이 몇 없는 동네 소식이 전해졌다. 아르바이트생이지만 선원이라는 이유 때문에 차마 실종된 자식 이름을 크게 부르지도 못하는 가족 이야기가 전해졌다. 조리사였던 따뜻한 아버지 이야기, 엄마·아빠, 오빠가 자기만 놔두고 이사 갔다고 우는 5살 어린 소녀, 살았기 때문에 죄인처럼 살아간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도 들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슬픈 기념일들을 하나씩 보냈다. 그렇게 우리는 30일이 넘는 기다림 속에 사망자와 실종자, 생존자들의 삶이 풀썩 내려앉고 있음을 전해들었다. 그 와중에 반성하길 바랐던 대통령의 담화문이 발표됐다. 최종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에 대한 구조에 힘을 쏟겠다는 이야기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