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실종자 가족 만난 박근혜 대통령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해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과 면담한 뒤 가족대책본부 천막을 나서고 있다. 왼쪽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남소연
지난 4일 진도 팽목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도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겪어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의 고통을 잘 헤아릴 수 있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그 고통을 잘 아는 사람이 자식을 잃은 부모와 가족들을 그렇게 몰인정하게 대해야 하는지는 별개로 치더라도 그 말이 지니고 있는 모순과 부적절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이 가족을 잃는 슬픔을 겪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도 두 번이나 양친을 총탄에 잃어야 했다. 단순한 사고사나 자연사도 슬픈 일인데, 양친부모를 모두 총탄에 잃었으니 생각하면 참혹하고도 참담한 일이다.
하지만 부모를 잃은 슬픔과 자식을 잃은 슬픔은 같지 않다. 나도 예전에 부친을 여의었고, 현재 연세 아흔이 넘으신 모친을 정성껏 모시고 살고 있지만, 부모 잃은 슬픔이 자식 잃은 슬픔과 같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 어떤 효성스러운 자녀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죽하면 예부터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라는 말이 있었겠는가. 그만큼 자식을 잃은 슬픔은 크고도 크며,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자식을 잃은 슬픔일 것이다.
더구나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은 단순한 사고로 자식을 잃은 것도 아니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자식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은 것도 아니다. 한 어머니가 팻말에다 적은 "엄마가 보는 앞에서 아이를 수장시키는 나라"라는 말이 적시하듯이 두 눈을 뜨고 뻔히 보는 앞에서 자식들을 잃어야 했다.
박 대통령은 자신도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겪어봤다는 그 '사실' 쪽으로만 생각이 미쳤을 뿐 부모를 잃은 슬픔과 자식을 잃은 슬픔은 절대로 똑같지 않다는 것은 아예 생각지도 못한 것 같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 그 만고불변의 이치를 헤아리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또 하나, 박 대통령은 자신도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겪어본 사람이라는 생각에만 파묻혀서 자기 아버지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자기 아버지가 권력 유지를 위해 이런저런 형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버렸는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가정이 가장을 잃고 파탄이 나버렸는지,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것 같았다.
굳이 정리를 해보면, 박 대통령 자신도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겪어봤다는 것은 1단계 사실이다. 부모를 잃은 슬픔과 자식을 잃은 슬픔은 절대로 똑같지 않다는 것은 2단계 사실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목숨을 앗아버린 사람들, 그로 인해 가정이 파탄 나서 오랜 세월 질곡의 고통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은 3단계다.
이 3단계 중에서 박 대통령의 사고 범위는 1단계로만 국한돼 있다. 2단계와 3단계 쪽으로는 생각이 미치지를 않았다는 게다. 자식 잃은 부모들의 슬픔을 헤아릴 수 있다면, 또 자기 아버지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자신도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겪어봐서 잘 안다는 투의 말은 차마 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사소한 말 한마디만 가지고도 그녀의 사고 범위가 매우 좁고 한정돼 있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또 타인들에 대한 배려라든가, 사려 깊은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안타깝고도 애석한 일이다.
어느 집단이든 리더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에 따라 그 집단의 품위가 상승되기도 하고, 천박한 양상으로 가기도 한다. 리더의 영향력은 어느 집단이나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최고 지도자가 똑똑하고 확장된 시야를 가지고 있으면 국민 전체도 알게 모르게 똑똑해지고 시야가 트일 수 있다. 반대로 최고 지도자의 시야가 한정돼 있거나 시각이 굴절돼 있다면 국민들도 영향을 많이 받게 되고, 그에 따라 심각한 반작용도 일어나게 된다.
우리는 지금 정부가 곧 국가인 줄 아는 관리들과 국민들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정부가 국가인 것으로 알게 하는 행태들이 청와대를 비롯해 곳곳에서 갖가지 형태로 빚어지고 있다. 그것의 가장 큰 갈래가 '종북 타령'이다. 종북 타령도 껍질을 벗겨보면 지도자의 좁은 시야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며, 정권이나 정부가 곧 국가라는 인식을 심화시키려는 저의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따른 전 국민적인 슬픔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그 슬픔을 타박하고 폄훼하는 언동들이 나타나고, 염치없이 종북 타령이 끼어들곤 하는 것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의 '좌파 색출' 발언이나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의 '실종자 가족 선동꾼' 글에서도 나타났지만, 이른바 '일베충'이라 불리는 특정 부류의 인면수심적인 행동들이 도처에서 자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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