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 1.6m, 세로 1m 크기의 모듈 하나 무게는 20kg 정도. 이 한 모듈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22kw 정도.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박승록(맨 왼쪽) 이사가 주민들에게 설치법을 안내하고 있다.
최은경
먼저, 가구별로 전기 소비량을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적정기술과 에너지자립을 연구하는 경남 산청의 이동근 선생을 밀양에 모셔서 강연회를 했습니다. 태양광 발전을 포함하여 태양광 조리 시설과 고효율 기술이 적용된 온갖 기자재들을 보신 어르신들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한번 해보자, 좋다, 의기투합이 쉽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당장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전 전기를 아예 쓰지 않으려니 냉난방은 차치하고라도 3㎾ 규모의 태양광설비를 달아야 하는데, 결국 돈이 문제였습니다. 모금을 통해서 조달하더라도 자부담으로 500~600만 원의 목돈을 한 번에 부담할 만한 여력이 되는 가구가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다들 현금 소득이 거의 없다시피한 시골 노인들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상징성이 높은 마을회관들을 섭외했습니다. 상당수 마을에서 한 번 해보겠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시골 마을들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대개 마을회의를 통한 전원합의를 전통으로 합니다. 마을 전체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든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입니다.
시골 어르신들 중에는 한여름에는 에어컨 바람 쐬러, 한겨울에는 기름보일러 안 돌리려고 마을회관에서 소일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지요. 이런 분들이 '여름에 에어컨 못 쓰면 우리는 우짜노' 하십니다. 그런데 냉난방까지 태양광으로 하려면 필요한 설비 용량이 확 치솟습니다. 결국 마을회관에서의 태양광발전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호기롭게 시작한 밀양대책위의 프로젝트, '한전 계량기 떼서 패대기치기' 퍼포먼스는 이렇듯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서울햇빛발전협동조합에서 연락이 온 겁니다. 계량기를 떼낼 정도는 아니지만, 여러 생협들과 단체들이 뜻을 모아 밀양 송전탑 농성장 15곳에 250w 용량의 태양광 발전기 15개를 달아준 것입니다(가로 1.6m, 세로 1m, 250w(와트) 용량의 태양광전지판 하나의 무게는 약20kg. 이 한 모듈에서 생산되는 전기량은 한 달에 약 22kWh 정도).
그날은 1월 16일, 지난 2012년 용역들의 폭력에 맞서다 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하신 한 어르신의 기일이었습니다. 밀양 송전탑 어르신들이라면 다들 마음이 착잡해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날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이 주관하고, 밀양 765kV 송전탑반대대책위, 서울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준), 경남햇빛발전협동조합, 한살림생산자연합회 등 10여 개 단체가 주최한 밀양햇빛버스가 도착했습니다.
마을마다 있는 농성장에 태양광 모듈과 무겁디 무거운 배터리를 낑낑대며 옮겨서는 삽질을 하고 케이블을 연결해서 뚝딱뚝딱 태양광 발전기들이 달렸습니다. 주민들은 처음에는 좀 시큰둥하기도 했습니다. 애들 소꿉장난 아니겠느냐, 약간의 오해도 있었습니다. 축전식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시던 터라, 흐리거나 비오는 날에는 무용지물이고 겨울철에는 햇빛이 약해서 전깃불이 흐리다더라, 이렇게 알고 계신 분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견물생심이라고 막상 설치되는 날 어르신들 얼굴에 함박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분이 있으면 우리 마을에 하나라도 더 가져가려는 눈치 작전도 볼 만했습니다. 이날 설치한 전지판으로는 기껏해야 농성장에서 휴대폰을 충전하거나 형광등을 밝혀주거나, 커피포트에서 물을 데우는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농성장으로 끌어온 전기 코드 중 하나를 뽑아 태양광 모듈에 연결된 코드에 꽂는다는 사실이 주는 기꺼움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전기를 만들어 쓸 수 있다는 데 대한 만족, 그게 전부는 아니었을 겁니다. 어른들이 가장 아프게 생각했던 것. 얼마 되지도 않는 한전 전기를 쓰면서 '니들은 전기 안 쓰냐?'는 등의 온갖 욕설들에 시달려야 했던 그 마음 고생을 씻기라도 한 듯, 시원한 마음이 어르신들의 함박웃음에 서려 있었던 것입니다.
에너지자립마을 밀양으로 내쳐 달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