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퇴진' 목소리가 종교계로 확산되는 것은 정권의 정통성에 치명상이 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움직임의 확산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사제단 박창신 신부의 NLL과 연평도 관련 일부 발언만을 떼어내 맹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그 사람들의 조국이 어디인지 의심스럽다"고 밝히며 비국민 취급을 서슴치 않았고,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사제복 뒤에 숨어 대한민국 정부를 끌어내리려는 반국가적 행위를 벌이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황우여 대표와 김태흠 원내대변인도 종북과 국적을 거론하며 비난 대열에 합류했다.
새누리당의 막말 퍼레이드는 이전에도 있었다. 20일 국회대정부질의에서 민주당 진성준 의원이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국정원과 국방부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에 대해 따지자 새누리당 박대출 의원은 "종북하지 말고 월북하지"라는 막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21일 진보당 김재연 의원이 "진보당은 1% 특권층이 가진 정치권력을 99%국민에게 돌려주겠다. 이 땅의 민중을 위해 일하겠다. 이것이 위헌이라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이라고 발언하자,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은 "그게 김일성주의"라며 막말로 비아냥거렸다.
민주당이나 진보당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국회의원이 그것도 사석이 아닌 국회대정부 질의에서 야당 의원에게 "월북하라.", "김일성주의"니 하는 것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기본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새누리당 박대출, 이장우 의원은 국회윤리위원회에 회부됐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국회 다수당이고 집권당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실제로 징계를 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새누리당의 종북몰이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대학까지 확산되고 있는 점이다. 대학을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른 어떤 곳보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희대에서 자본론을 통하여 자본주의 강의를 하고 있는 대학강사를 학생이 국정원에 '반미성향을 가진 강사'라면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최근에는 연세대 김아무개 교수가 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보수단체 회원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보수단체회원들은 학교에 찾아가 교수 퇴진과 후원회장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과 선전전을 벌였다. 이 역시 사상과 양심의 자유뿐 아니라 학문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나라밖 공산당과 손잡은 박근혜 대통령은 괜찮나 현재의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면 누구든 종북세력, 위헌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밖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보수세력들에게 자유민주주의 모국으로 추앙하는 미국의 시애틀에서 사회주의자 시의원이 당선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AP 등 언론들은 지난 17일 시애틀에서 크샤마 사완트라는 사회주의 정당 후보가 당선돼 100년만에 최초의 사회주의자 시의원이 탄생했다고 보도했다.
사완트 의원은 인도 태생으로 지난 몇 년간 미국 정·재계를 뒤흔들었던 오큐파이(점령하라) 운동에 참여했고, 이번 선거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부자증세, 임대료 상한제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는 공개적으로 사회주의자임을 밝히고 선거운동을 진행했지만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더 재미있는 것은 50.3%를 득표한 사완트 후보에게 0.9%P 차이로 아깝게 패배한 4선의 현역의원 리처드 콘린이 "시애틀 주민들이 사회주의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며 패배를 인정한 점이다. 우리나라 선거에서 사회주의자임을 선언하고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가 있다면 아마 종북주의자, 위헌세력을 몰아 선거운동도 하지 못하게 난리가 났을 것이다.
보수세력이 자유민주주의 모국으로 인식하는 미국에서는 공개적 사회주의자가 시의원에 당선도 되고, 사회주의 정당뿐 아니라 공산당도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보수세력들의 기준으로 본다면 미국 시민들도 종북세력인 셈이다.
비슷한 일은 남아메리카 칠레에서도 벌어졌다. 지난 19일 칠레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좌파연합 후보인 바첼렛 전 대통령이 과반에는 미달하는 1위 득표를 해 결선투표를 앞두고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칠레 공산당은 정권교체가 중요하다면서 사회당 소속의 바첼렛 후보 지지선언을 하며 선거 운동을 함께 했다.
이번 칠레 대선과 함께 진행된 의회선거에서 바첼렛의 좌파연합은 하원 120석 중 72석을 얻었다. 이들 가운데는 2011년부터 이어진 대학 무상교육 실현과 신자유주의교육 반대를 외치며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공산당 소속 카밀라 바예호 칠레대 학생회장을 비롯해 공산당 소속 6명이 포함돼 있다. 이번 칠레 선거의 진짜 승자는 바첼렛이 아니라 공산당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칠레는 OECD 회원국이며 남미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다. 이런 나라 칠레에서도 공산당이 있고, 국회에 의석까지 갖고 있다. 칠레는 우리나라와 최초로 자유무역협정(FTA)를 맺은 나라이며, 남미의 최대무역국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