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을 싸잡아 종북으로 모는 새누리당의 이 같은 낙인찍기는 '이석기 사건'이 불거진 후 계속돼왔다.
김지현
'십자가 밟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가 기독교 신자들을 찾아내기 위하여 기독교 신자가 아니거나 기독교 신앙을 포기한 것을 증명하는 방편으로 십자가를 밟고 가도록 강요한 것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와 일본 에도막부시대에 천주교 신자를 가리기 위해서도 사용됐다.
헌법 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자기의 내면적 사상과 양심을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요당하지 않는 자유로 '침묵의 자유'라고 불린다. 직접적인 강제뿐 아니라, 충성 선서 같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사상과 양심을 짐작하는 일도 금지된다.
그런데 조선시대도 아니고, 일제 강점기도 아니고, 유신시대나 5공 군사정권 시절도 아닌 2013년 대한민국에서 이 십자가 밟기가 다시 등장했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정치권과 시민사회, 언론과 지식인은 철저하게 '이석기와 통합진보당(진보당)을 지지하는지 않는지'를 밝혀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석기에 반대하지 않으면 모두 종복 세력으로 낙인찍기가 진행 중이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지하로 숨어 들었다. 민주주의 사회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석기 체포 반대 14, 기권 11, 무효 6… 반대는 완전 대놓고 종북, 기권도 사실상 종북, 무효는 은근슬쩍 종북, 대한민국 국회에 종북 의원이 최소 31명"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국정원, 이석기 발언 알고도 왜 100일간 침묵했나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통과되던 날 이정희 진보당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하여 국정원 녹취록에 나오는 총기발언 등에 대해 "일부 참가자의 개인적 농담 수준"이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농담으로 총기 탈취를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지만, 농담으로 했는데 진담으로 들일 수도 있고, 거꾸로 진담으로 했는데 농담으로 들일 수도 있다. 문제의 5월 모임에서 그 발언이 진짜로 있었는지 없었는지부터, 있었다면 진담이었는지 농담이었는지, 진담이었다면 개인적 의견이었는지 집단적 결의였는지는 앞으로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의 녹취록이라는 텍스트만 보고 진담으로, 또 집단적 결의로 받아들여 내란음모의 결정적 증거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무리가 있다.
김재연 의원의 "모임 자체가 없었다"는 발언이나 이석기 의원의 "강연만 하고 갔다"는 발언 등 사실 관계 자체가 틀린 발언들이 의혹을 키운 것도 사실이다. 명백한 실책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 농담과 실제는 명백하게 구분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정원 말대로 지하혁명조직이 총기 탈취와, 폭탄 준비를 결의했다면 100일이 지난 지금까지 그 흔한 비비탄총이나 밥솥폭탄 하나 안 만들고 놀았다는 것이 된다. 그런 혁명조직도 우습지만, 그런 혁명조직을 발견하고도 100일 동안 잡아들이지도 않고, 총 한자루, 밥솥폭탄 하나 못 찾아낸 국정원은 더 우스워지는 것 아닐까? 바야흐로 '농담내란죄'라는 죄목이 신설되야 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