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해체 외치는 이석기 의원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내곡동 국정원 앞에서 열린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 공안탄압 규탄대회'에 참석해 자신을 비롯한 당직자들의 '내란예비음모' 혐의 수사에 대해 국정원이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하고 있다며 국정원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유성호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이 가장 곤혹스러워 하는 것은 바로 녹취록의 존재다. 국민들도 국정원이 공개한 이 녹취록의 내용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녹취록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던 진보당은 짜깁기에 의한 날조, 왜곡이라며 원본 녹음기록과 동영상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이 녹취록의 존재와 출처는 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상규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하여 해당 녹취록은 내부 조력자 또는 프락치에 의한 불법 녹음 또는 도촬(도둑 촬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여전히 합법적인 감청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거액매수설도 부정한다.
언론에 공개된 진보당 내부의 국정원 조력자는 과거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진보당 전신)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으며, 국정원이 관련자들을 압수수색하고 체포한 이후 갑자기 행방을 감췄다고 한다. 진보당에 따르면 국정원에 매수돼 가족 전체가 해외로 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정원 주장처럼 영장을 바탕으로 한 감청이라고 하더라도 3년 동안이나 합법 정당을 감청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충격적이다. 또, 감청의 근거가 되는 통신비밀보호법 조항이 2010년에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2011년 12월 31일 이후 효력이 중단되었다는 점에서 녹취록의 법적 증거능력을 두고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내란예비음모 사건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되자 진보당은 즉각 이를 공안탄압이고 조작이라고 규탄하고 당을 투쟁본부로 전환했다. 지난 8월 31일 3천여 명이 국정원 앞에서 대규모 항의집회에 참여했고, 저녁에는 촛불집회에 대거 참석했다.
지난 8월 30일에는 녹취록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경기도당 간부들을 중심으로 기자회견을 하기도 하고, 저녁에는 이석기 의원이 의원실 복도에서 직접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9월 1일에는 이상규 의원이 다시 의원실 복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정원을 돕는 내부 조력자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설명에도 아직까지는 제기되는 의혹을 해소해줬다고 보기 힘들다. 더 적극적이고 정확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녹취록과 5월 12일 모임 사실관계를 좀 더 명확하게 해명해야 하며, 프락치 존재 여부의 근거를 밝히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진보당, 국민 앞에 사실관계 먼저 정확히 밝혀야 이번 사건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탄압하는 국가보안법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는 반박만으로는 부족하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더라도 내란죄를 없앨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라는 법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악법이라고 할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 형법에 내란죄를 갖고 있지 않은 나라는 없다. 진보당 입장에서 국가보안법 상의 이적혐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 보장이라는 근거로 그 혐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당연할 수 있지만, 내란죄 부분만큼은 분명한 사실관계로 반박해야한다.
국민에게는 이 녹취록의 증거능력만큼이나 녹취록 발언들의 내용과 진위가 중요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1급비밀인 남북정상회담록을 왜곡해 공개해버린 것에서 알 수 있듯 국정원은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녹취전문과 녹음기록, 동영상자료를 공개할 가능성이 높다.
NLL정상회담록은 직접 당사자인 노무현 대통령이 고인이 된 상황에서 내용을 반박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웠다. 이 문제가 진실공방이 되는 순간, 각종 자료를 가지고 세부적인 내용까지 볼 수 있는 청와대와 국정원, 새누리당에 비해 반대편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