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취업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국정원과 한국전력 공개 채용정보(국정원의 경우 현재 남재준 원장체제임에도 대표자명이 이전 김만복 원장으로 되어 있다)
'사람인'
정보기관의 특성상 국정원 근무환경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취업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국정원의 채용정보에는 급여, 근무지 등도 나와 있지 않다. 국정원을 다룬 KBS 다큐멘터리를 통해 채용경쟁률을 알 수 있었다. 2006년 방송사 최초로 국정원 내부를 취재해 보도한 <KBS 수요기획 - 최초공개 국가정보원> 내용에 따르면 당시 국정원의 채용 경쟁률은 100대1이었다.
올해도 국가정보원 채용에 대한 구직자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최근 한 취업포털사이트에 올라온 국정원의 7급 직원 채용정보 조회수는 2만6000여 건이 넘었다. 평균 급여 7473만 원, 근속년수 18.4년을 자랑하는 '신의 직장' 한국전력공사에도 전혀 뒤지지 않았다.
인재를 '댓글부대'로 만들다니근무환경도 알려지지 않은 정보기관에 구직자들이 몰린다는 점이 의아했다. 더욱이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위해 '인터넷 정치공작'을 벌인 국정원에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많은 네티즌은 '7급 공무원 댓글부대'라며 국정원을 조롱하기도 했다.
국정원에 입사하는 이들은 누굴까? 무척이나 궁금했다.
궁금증은 이정훈 <동아일보> 전문기자가 월간지 <신동아>에 기고한 국정원 관련 기사를 통해 다소 풀렸다. 이 기자는 2008년 7월, 언론사 최초로 국정원 신임요원들의 산악훈련을 동행 취재했다. 국정원 기간요원의 설명을 빌어 이 기자가 보도한 국정원 신임요원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국정원의 근간은 중앙 언론사의 경우와 비슷한 이른바 'SKY대' 출신이다. 국정원의 4대 학맥으로는 고려대, 서울대, 한국외대, 연세대가 꼽힌다." - <신동아> 586호. 국정원 신임요원훈련 언론사 최초 동행취재 - "이들은 흑색요원입니다, 절대 사진 찍지 마세요"에서. 스펙만 화려한 게 아니었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심도 남달랐다. 국정원 입사시험 대비 학원 관계자는 지난 7월 30일 전화통화에서 국정원 입사 준비생들의 특징을 묻는 질문에 "(취업 준비생들이) 댓글이나 달기 위해 국정원 입사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국가봉사와 정의, 명예와 같은 대의에 헌신하는 자세가 된 친구들"이라고 치켜 세웠다.
<신동아> 기사와 국정원 입사 대비 학원 관계자의 말, 18대 대선에 개입한 국정원의 정치공작 행태를 종합해 보자. 국정원이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무장한 이른바 명문대 출신의 인재들을 뽑아 정권을 위한 '7급 댓글 부대'를 만들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국정원은 명예와 대의를 중시하는 인재들을 오피스텔에 처박아 놓고 인터넷 정치공작에 골몰하는 '오타쿠'로 만든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목도리로 얼굴을 가린 채 수서경찰서에 나타난 스물아홉의 국정원 요원도 그랬다. 서울 소재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MB의 4대강 사업을 치켜세우는 댓글공작이었다. 18대 대선을 앞두고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비난하는 댓글을 달았다.
한 번쯤은 자신의 업무가 정당한지 의심해 볼 만도 하다. 국정원 인터넷 정치공작을 조사한 경찰 분석관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라며 동정할 정도로 '댓글 공장'은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를 비롯한 국정원 심리정보국 요원들은 신임시절의 충성서약을 되새기며 국정원장의 지시사항을 자기 신념화했을 것이다.
이정훈 기자는 "국정원이 충성서약을 통해 신임요원들을 끊임없이 세뇌한다"고 전했다. 요원들에게 '국가를 위해 충성하라'는 요구를 반복해 이를 신념화 시킨다는 것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를 이행한 충실함도 여기에서 나왔을 것이다.
국정원 요원들의 끊임없는 충성 서약그는 자신들의 '댓글 달기'가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해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생각을 해봤을까? 상관이 종북세력으로 지목한 야당 후보를 낙선시키는 게 정말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것이라 믿었을까? 주어진 소임을 위해서라면 '정치관여를 금지'한 국정원법 9조는 무시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을까?
아마 그도 국정원 대선 개입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이 번지는 것을 보고 있을 것이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많은 청소년을 보면서 갈등을 했을지도 모른다. 학생들의 손에는 "국정원에 민주주의를 도둑맞았다"는 피켓이 들려 있었다. 민주주의를 훔쳐간 이들은 가슴이 뜨끔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