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다리와 함께 왼쪽 팔꿈치가 부서져 한동안 깁스를 해야 했습니다.
유성애
사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확인한 고시원 CCTV에 의하면, 그날 밤10시경 방에 들어온 저는 복도에서 비틀거리며 경련 증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문을 찾아 열었는데 그곳이 하필 화재 시에 대피할 수 있는 베란다였고, 그 난간이 낮았던 탓에 떨어졌던 거지요.
저를 담당했던 의사들은 사고 후 찍은 CT(컴퓨터 단층촬영)에서 제 뇌혈관의 한 부분이 부어있는 걸 발견했다고 합니다. 조금 더 늦었으면 뇌출혈로도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그나마 경련이 먼저 온 탓에 떨어져 팔다리가 다친 거였다고 하네요. 사고가 난 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왜 하필 저였을까요? 왜 하필 그날, 그리 늦지도 않았던 그 시간, 복도에서 비틀거리던 저를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걸까요. 4층에서 떨어졌을 당시 중간에 위치한 간판에 부딪힌 덕에 간신히 죽음을 피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머릿속에서는 불만 가득한 '왜?'라는 질문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갈데없는 분노로 모난 마음은 지인들의 위로조차 상처로 받아들이고는 했었지요. 병실에서의 긴 하루 끝에 잠들면서도 늘 이 현실이, 깨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꿈'에 불과하길 간절히 바라곤 했습니다. 꿈이 아니라면 차라리 깨지 않기를 기도하면서요.
그러나 삶이란 어찌나 오묘한 것인지. 우리가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던 막다른 곳이 때로는 출구가 되고, 모두가 축복이라 믿었던 일이 가끔은 재앙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예고에 없던 사고로 꿈은 물론 건강도 잃고, 현재는 물론이고 열려있던 미래마저도 보이지 않는다며 우울의 나락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쩌면 가장 캄캄한 지금이 동트기 직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물론 주변 사람들의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이 필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