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용 전기요금 누진 단계별 비율 (자료 : 한전 정보공개청구)
안호덕
이런 상황에서 13일 언론을 통해 공개된 지경부의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선 방안은 지금까지 국민들이 요구해온 내용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고, 편법으로 요금을 올리면서 누진제 완화 생색을 내어보자는 얄팍한 술수에 불과하다.
지경부에서 내놓은 안은 현행 주택용 전기요금 6단계 11.7배에 이르는 누진제를 3-5단계로 조정하고, 1단계와 마지막 단계 요금의 차이도 4-8배 정도로 축소한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누진 1단계(50kWh), 누진2단계(150kWh), 누진3단계(250kWh) 사용하는 가정은 지금보다 각각 1984원, 421원, 2183원을 더 내야 하고 누진 4단계(350kWh), 누진 5단계(450kWh), 누진 6단계(601kWh)를 쓰는 집은 오히려 1456원, 3223원, 3만3470원 요금을 덜 내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누진제 완화가 반드시 저소득층이나 전기를 적게 쓰는 낮은 누진제 대상자의 요금 인상이 전제돼야 한다는 설명은 동의하기 힘들다. 누진제 단계를 축소하면, 거기에 맞게끔 누진 요금도 조정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누진제 단계만 축소하고 현행 요금 체계를 거기에 맞추려하니 낮은 누진제 대상자의 요금 인상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택용 전기요금 총수입은 고정시켜 두고 요금을 조정하다보니 발생한 일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위 표에 나타난 2012년 6월 전기 요금 현황을 살펴봐도 이는 쉽게 확인될 수 있다. 전기를 상대적으로 적게 사용하는 1,2,3단계 누진 대상자가 전체가구의 73.3%이다. 전기 사용량이 폭증하는 8월을 제외하면 4,5,6단계 높은 누진 대상자가 늘어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지경부에 개편안대로라면 우리나라 전체가구의 70% 이상은 누진제 개편이라는 미명하에 한달에 2천원-5천원 이상 오른 전기요금을 감당해야 된다. 지난 8월 에어컨 사용 등으로 전기요금 누진제 대란이 일어났을 때 국민적 요구는 누진제를 축소하여 요금을 낮추라는 것이었지, 높은 누진 단계를 조정하여 5,6단계 누진 대상자를 구제해 달라는 요구가 아니었다. 1단계가 2단계로 되든, 3단계가 4단계가 되든, 전기요금 폭탄이 돌아오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누진제 개편안이 나오자 누진제 논의 자체를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요금 폭탄을 맞는 사람은 어차피 살만한 사람들이니만큼 저소득층 혜택을 늘리고 누진제를 그대로 두자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동의하기 힘들다. 비록 낮은 단계 누진 요금 대상자가 전체가구의 70%에 달한다고 하더라도 에어컨, 전기담요, 전기난로 등을 사용할 경우 수십만원의 요금 폭탄을 맞을 수 있는 것이 누진제의 함정이다. 누진제를 고치려면 제대로 손을 봐야지, 누진제 논의 자체를 중단하자는 주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경부 내놓은 방법이 아니더라도 왜곡된 누진제를 충분히 완화시킬 수 있다. 현행 1단계 전기요금이 6단계와 요금이 11.7배 차이가 나지만 그렇다고 1단계 사용요금이 절대적으로 저렴한 것도 아니다. 주택용 저압은 kWh당 59.1원으로 산업용의 겨울철 가장 저렴한 경부하 요금제 요금 kWh당 57.5원보다 오히려 요금이 높다. 누진제를 완화한다고 반드시 1단계 사용요금을 올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가장 낮은 시간대가 kWh당 57.5원, 가장 높은 시간대가 kWh당 156.5원으로 차이는 3배가 되지 않는다. 주택용 누진제를 이 기준에 맞추는 것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주택용 누진제 완화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주택용 전기료가 산업용이나 일반용에 비해 턱없이 비싼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