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산 억새밭에는 억새만 있는 게 아니다

[강원도 구석구석] 석회암 지대 민둥산의 또 다른 볼거리 '돌리네'

등록 2012.10.12 20:19수정 2012.12.18 22:02
0
원고료로 응원
 민둥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눈부신 억새밭.
민둥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눈부신 억새밭.성낙선

강원도 정선군 민둥산 억새밭. 가을이 되면, 산마루가 억새로 뒤덮이는 장관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전국에 억새밭이 지천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이 먼 곳에 있는 민둥산까지 찾아오는 이유는 무얼까?

이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억새밭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을 보여준다. 1118미터 산 정상에서 바라다보는 은빛 억새밭이 마치 녹색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처럼 보인다. 산 밑에서 올려다봤을 때는 예상하기 힘들었던 풍경이다.


민둥산 산마루에 올라서면, 저 멀리 사방에서 녹색 숲으로 뒤덮인 산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걸 볼 수 있다. 그 한가운데 오로지 민둥산만이 하얀 빛을 띠고 있다. 사람들이 줄을 지어 민둥산의 그 높고 가파른 산비탈을 걸어 오르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민둥산 정상 부근, 산비탈을 뒤덮은 억새
민둥산 정상 부근, 산비탈을 뒤덮은 억새성낙선

1118미터 산 정상, 제주도 초원 연상시키는 억새밭

 민둥산 등산로 입구 안내소.
민둥산 등산로 입구 안내소.성낙선
민둥산은 산 정상의 억새밭 아래로는 녹음이 짙은 숲이다. 억새밭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줄곧 그늘이 짙은 나무숲이다. 그 숲을 벗어나 억새밭에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는 그때까지 보아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에 빠져든다. 그 풍경이 저절로 감탄사를 부른다.

민둥산은 생각 외로 가파른 산이다. 증산초교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는 초입에서부터 완경사와 급경사로 나뉜 두 갈래 길이 나온다. 급경사가 따로 있어, 완경사가 만만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완경사가 결코 완경사라 부를 만한 것이 아니다.

완경사는 그저 급경사에 비해 좀 더 완만하다는 걸 뜻할 뿐이다. 그러니 완경사 길을 택했다고 너무 자신만만해서는 안 된다. 급경사가 2.6km이고, 완경사가 3.2km이다. 600여 미터 정도 차이가 난다.


급경사는 그만큼 더 힘들다. 산을 타는 데 자신이 없으면 완경사로 돌아가는 게 좋다. 억새밭이 있는 곳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해발 500여 미터 지점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를 따라 산 정상까지 2시간 가까이 걸어 올라야 한다.

 민둥산 등산로는 의외로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민둥산 등산로는 의외로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성낙선
완경사 길을 택했는데도 사람들이 등산로 초입에서부터 비지땀을 흘린다. 가파른 비탈길이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계속해서 이어진다. 중간에 두세 군데 내리막길은 더 길고 높은 오르막길을 예고할 뿐이다.


그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이만 하면 됐다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도 민둥산 억새밭은 좀처럼 그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억새밭은 사람들이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서 이제는 더 이상 산을 오를 힘이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쯤 갑자기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그 순간 억새밭은 사람들로 하여금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여기까지 올라온 보람을 일시에 만끽하게 만든다. 아마도 여기에 민둥산 억새밭이 특별히 더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가 숨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억새밭이 두 눈에 들어오는 순간, 배낭을 짊어맨 몸이 억새만큼이나 가벼워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민둥산 산길이 가파르다고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대부분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제 각각 그 산을 오르는 등산법을 터득하게 돼 있다. 그 산을 누구는 뛰다시피 오르고, 또 누구는 기다시피 오른다. 결국엔 모두 정상에 가 닿는다.

 억새밭이 나오기 직전, 나무 그늘을 벗어나는 등산객들.
억새밭이 나오기 직전, 나무 그늘을 벗어나는 등산객들.성낙선

 민둥산 억새밭으로 들어서는 등산객들.
민둥산 억새밭으로 들어서는 등산객들.성낙선

학술적 가치가 높은 민둥산, 민숭민숭 볼 산이 아니다

이 무렵 사람들이 민둥산을 오르는 이유는 대부분 억새를 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민둥산에는 억새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민둥산에서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돌리네' 지형이다. 다른 산에서는 보기 힘든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민둥산 정상에 서서 화암약수터 방향으로 내려가는 등산로를 내려다보면, 발 아래로 화산 분화구처럼 움푹 들어간 커다란 구덩이가 눈에 들어온다. 한라산 백록담을 연상시키는 구덩이다. 이 구덩이는 석회암의 탄산칼슘 성분이 녹아내리면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민둥산 돌리네 지형. 가운에 움푹 들어간 부분이 돌리네다.
민둥산 돌리네 지형. 가운에 움푹 들어간 부분이 돌리네다.성낙선

민둥산은 석회암 지대다. 오랜 세월 빗물에 녹아내리면서, 산 표면에 여기 저기 구덩이가 생겼다. 그런 구덩이가 모두 12개 가량 있다. 그 구덩이 아래로는 물과 진흙 뻘이 고인 석회암 동굴이다. 옛날에는 마을 주민들이 그 동굴을 드나들던 때도 있었다.

민둥산을 오르는 길에 '발구덕'이라는 지명이 눈에 띈다. 여덟 개의 돌리네 구덩이가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곳에 사는 한 주민의 말에 따르면, 초겨울에는 그 구덩이로 동굴 안의 더운 공기가 수증기가 되어 피어오른다고 한다.

 민둥산 정상 표지석을 안고 기념사진을 찍는 등산객들.
민둥산 정상 표지석을 안고 기념사진을 찍는 등산객들.성낙선

민둥산은 결코 평범한 산이 아니다. 지질학적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은 산이다. 산 정상이 억새로 뒤덮여 있다고 해서,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라지 않는 황무지나 다름이 없는 산이라고 지레짐작해서는 안 된다. 민둥산은 결코 민숭민숭 아무렇게나 볼 산이 아니다.

민둥산 억새밭은 화전민들이 산 정상에 불을 놓아 밭을 일군 결과 만들어졌다. 화전이 금지되고 나서 화전민들은 떠났지만 그 후로도 나무는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대신 억새가 자라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그 억새가 훗날 민둥산을 상징하는 효자 식물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민둥산 정상에서 내려가 본 억새밭. 왼쪽으로 남면 시가지가 내려다 보인다.
민둥산 정상에서 내려가 본 억새밭. 왼쪽으로 남면 시가지가 내려다 보인다.성낙선

민둥산을 올라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증산초교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는 산을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더 힘들 수 있다. 등산 코스가 짧다고 해서 여행 시간까지 너무 짧게 잡아서는 안 된다. 어느 정도 여유 시간을 갖고 떠나는 것이 좋다.

 민둥산역. 2009년 9월, 민둥산 억새의 유명세에 힘입어 역 이름을 증산역에서 민둥산역으로 고쳤다.
민둥산역. 2009년 9월, 민둥산 억새의 유명세에 힘입어 역 이름을 증산역에서 민둥산역으로 고쳤다.성낙선

#억새 #민둥산 #돌리네 #정선 #발구덕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3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4. 4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5. 5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