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 산다"라고 했을 뿐인데, 술자리에 동석한 한 남성이 "혼자 사는 여자~ 유후~"라며 신나 했다. 그저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하지만...
김지현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솔직함'은 '독'이라는 것을. 첫 직장에서 내가 혼자 산다는 것은 공공연히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 급여가 미뤄질 때 나보다 더 내 월세 걱정을 해주는 상사는 고맙다기보다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으로만 느껴졌다.
게다가 퇴근할 때 즈음 별다른 이유 없이 일을 맡기는 과장도 있었다. 딸 둘이 있는 과장이었는데, 일을 맡기면서 저녁 식사를 함께하길 권했다. 몸이 좋지 않아 한의원 예약을 했는데, 예약시간이 지나자 한의원에서는 내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연신 울렸지만, 그 과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고 했다.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집으로 데려다 주는 길, 그 과장은 이런 질문을 했다.
"너 자취방에 남자친구도 데려오고 그러니?""요즘 애들은 언제 처음 하니?""너도... 아, 아니다..."고시원에서 사는 게 창피해 항상 근처에서 내려달라고 하던 나는 차에서 내린 후 집에 오는 길 내내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야한 옷 입은 적도 없는데, 남자친구 얘기를 한 적도 없는데, 내가 웃음이 많아서 헤프게 보이는 걸까?' 이런 일을 처음 겪고 털어놓을 대상이 없었던 나는 이 모든 것을 그 사람 잘못이 아닌, 내 행동과 환경 때문이라 생각했다.
이는 새로운 모임과 이성 친구를 만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회사와 집 근처에서 운동을 하게 됐는데,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어울리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자연스레 술자리도 같이 하게 됐다. 그때도 역시 "혼자 산다"고 했는데, 동석한 한 남성이 "혼자 사는 여자~ 유후~"라며 신나 했다. 그저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하지만, 이후 그 남성은 일찍 가려는 내게 "너 혼자 살잖아? 오빠가 데려다 줄게"라며 오전 2시까지 붙잡는 일이 다반사였다.
순진했던 건지, 멍청했던 건지. 나는 내 나름대로 영악하고 똑 부러진다고 생각했는데,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나 보다. 나는 자취 생활의 고달픈 경험을 이렇게 톡톡히 치렀다.
그 후로도 수차례 직장을 옮겼던 나, 자연스레 수많은 사람들을 새롭게 만났다. 하지만 나는 절대 '혼자 산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행복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보호 아래 사는 여자인 척 행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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