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결혼식은 결국 시대의 자화상이다
이희동
정말이지 제목만으로도 가슴 아픈 기사들이 아닐 수 없다. 결혼한 지 어느덧 3년이 지났건만 다시 떠올려도 끔찍한 결혼 준비 과정. 비교적 수수하게 결혼식을 치르려 했던 나도 이 정도인데, 결혼식을 폼 나게 치르려면 얼마나 많은 수고와 돈, 그리고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일까? 그냥 결혼하면 될 것을 이 사회의 관례는 뭘 그리도 많은 걸 요구하는지. 오죽하면 '그 준비과정 때문이라도 다시는 두 번 다시 결혼하지 않겠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겠는가.
특히 <조선일보>는 위 기사들을 묶으면서 굳이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이는 매우 전략적이다. 어쨌든 <조선일보>의 주독자층이 50~60대인 이상 기사는 감성적으로 소비될 것이며, 그들은 신문을 접으며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대해 한번쯤 더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생을 모르고 커서 결혼식마저 부모에게 손벌리는 철딱서니 없는 젊은 것들과 덕분에 노후보장마저 불안정해지는 자신들의 모습.
그러나 그렇다고 그런 <조선일보>의 전략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것도 분명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건 <조선일보>가 힘겨운 개인들의 사례만 너무 많이 열거함으로써 결혼식 문화가 이렇게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구조적인 원인을 충분히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학연과 지연, 혈연으로 엮여있는 사회에서 결혼식이 가지는 위상과, 천민자본주의의 상징자본으로서의 결혼식의 위상. 정작 당사자와 부모들은 불행질 수밖에 없고, 오로지 결혼과 관련된 자본만이 이득을 보는 현재의 결혼 시스템이 왜 지속되는지에 대한 고민의 결여가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