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 거리에 불심검문을 위해 배치된 경찰들이 거리를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게 아동 성폭력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데도 경찰이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은 구시대의 진부한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난 3일 경찰이 발표한 성폭력방지 종합대책이라는 것은 불심검문을 부활하고 전담팀을 구성하며, 아동포르노대책팀을 설치하여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단속하겠다는 것이다.
경찰의 비장한 발표에도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대책이 가지는 시대착오성과 무능함 때문일 것이다. 마치 오래된 흑백TV를 통해서 과거 노태우 정권이 시행한 '범죄와의 전쟁'을 다시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과거 '범죄와의 전쟁'이 노동 인권 및 민주화 요구 등에서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정책으로 악용되었듯이, 현재 성폭력방지종합대책 또한 사형제 부활 등 인권문제를 악화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경찰은 성폭력범죄자를 잡기 위해 불심검문을 한다고 하는데,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자처럼 불온서적을 소지하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과연 무슨 방법으로 성폭력범죄자를 가려낼 수 있다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불심검문을 통해서 검거할 수 있는 성폭력범죄자는 과거 범죄전력이 있는 재범자 정도이며 초범자의 경우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성폭력범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매우 신고율이 낮다. 2010년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전국성폭력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 시 경찰 신고율은 강간의 경우 12.3%, 심각한 성추행의 경우는 5.7%밖에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신고되지 않은 90% 이상의 성폭력범죄자가 법망에 잡히지 않는 것이 현실인데, 불심검문을 통해서 성폭력범죄자를 검거한다는 방안은 사실상 실효성이 별로 없다. 지난 2009년 벌어졌던 아동 성폭력 사건은 온 국민을 분노케 했던 참혹한 사건이었지만, 정작 가해자였던 조두순은 그 사건 이전에 아무런 범죄 경력도 없었다. 이런 상황이고 보면 과연 불심검문이라는 것이 정말 성폭력범죄를 단속하기 위한 것인지, 정부의 형벌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든다.
최근 정부는 한 술 더 떠 사형제 부활에 대한 논의를 슬그머니 끄집어내며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추세이다. 과연 현재 한국의 성폭력 범죄 정책이 강력한 처벌책이 없어서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난 2년 사이 분노에 찬 여론을 등에 업고 충분한 검토나 준비과정도 없이 전자발찌, 성충동 약물치료요법(화학적 거세) 등 온갖 극단적인 가해자 처벌정책이 우후죽순으로 입법화됐다.
그럼에도 최근 화학적 거세도 모자라 물리적 거세를 시행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으며,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사형제 부활도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강경일변도 정책에도 전자발찌를 착용한 상태에서 버젓이 성폭력을 저지른 사건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으며, 정부는 이에 대해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있는 실정이다.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 및 왜곡된 성문화를 바꾸는 것 없이, 강력한 가해자 처벌정책만을 마구잡이식으로 도입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질문하게 되는 시점이다.
성폭력 피해자의 이름 악용해 '인권' 후퇴시키지 말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