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9월1일자 1면 . 엉뚱한 사람을 성폭력 피의자로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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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9월 1일자 1면에 나주 성폭행 사건과 관계없는 애꿎은 시민의 얼굴을 피의자 얼굴이라고 내보내 신문윤리실천요강의 보도준칙은 물론 언론중재법에서 명시한 인격권은 물론, 사건과 무관한 제3자의 명예와 인격을 훼손시켰다.
이에 앞서 <조선>은 지난 4월 7일자 '살인마 방엔 생리대·음란물...화장실은 차마 볼 수도 없었다'와 4월 9일자 '살인범, 시신 280조각 비닐봉지 14개에 나눠 담아'란 제목의 기사로 한국신문윤리위원회(제853차 회의)로부터 "신문윤리실천요강 제3조 보도준칙 제3항 '선정보도의 금지'에 저촉된다"며 '주의'조치를 받았다. <조선>은 조선족 오아무개씨가 수원에서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을 지나치게 상세히 기술했다. 당시 <조선>은 오씨 사진도 모자이크 없이 실었다.
그러나 5개월 만에 <조선>은 또 다른 성폭행 사건을 보도하면서 '범인 고OO의 얼굴'이라며 사진을 큼지막하게 실었으나 이는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한 남성의 사진이었다. 왜 <조선>은 성폭행 사건만 발생하면 피의자 신원공개, 특히 사진을 못 실어 안달을 내는 걸까? 더욱이 <조선>은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범 고OO. 지인들과 어울리는 모습의 이 사진은 인터넷에 올라 있던 것이다"라는 설명까지 천연덕스럽게 붙였다.
신문이 나온 뒤 한 누리꾼이 "내 친구의 사진이 나주 성폭행범 사진으로 도용됐다"며 포털사이트에 항의 글을 올리면서 진위가 밝혀졌지만 당사자는 얼마나 황당하고, 불안하고, 기가 막혔을까? 오죽했으면 개그맨 지망생인 피해자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죽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문이 확산되자 <조선>은 오보 사실을 인정하며 "잘못된 사진을 게재해 피해를 입은 분께 깊이 사과드린다. 독자 여러분께도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히며 문제의 사진을 인터넷 판에서 삭제했다. 그러나 이미 배달된 신문들의 사진은 지울 수가 없다.
누리꾼들과 일부 언론은 "과열된 특종 경쟁이 낳은 참사", "허위사실 날조가 부른 <조선일보>의 인격 살인", "범죄 상업주의가 부른 참사"라며 <조선>의 오보를 비난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흉악범 사진과 신원공개에 대한 <조선>의 자의적 의제설정 기준이다. 언론중재법은 물론 신문윤리강령에서도 공인이 아닌 형사피의자에게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여 피의자의 실명과 사진을 보도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이 아동 성폭행범·살인범과 같은 흉악범 사진을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워 몇 년 전부터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그 근저에는 '공익적인 목적'보다는 대중의 흥미를 자극하는 '선정주의' 또는 '특종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이후 <조선>은 오보를 반성하기보다 엄벌주의를 강조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흉악한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일을 저지른 사람도 '죽을 수 있다'는 경고 차원에서도 사형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사형제 지지" 입장을 밝히자마자 이를 크게 부각시키는 등 '범죄 억지력 높이자-성범죄 부르는 술'이란 기획기사를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주폭'과 '성폭력'을 어물쩍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내용이다.
[# 엄벌주의③]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거부 학교, '법대로 징계'하자고?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가 학교폭력 사실에 대한 학생부 기재를 보류한 지역교육청들을 대상으로 특별감사를 벌이고, 해당 지역교육청들은 교과부 장관 퇴진운동으로 맞서고 있다. 현직 교육감이 장관 탄핵운동을 벌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본격적인 대학입시철을 앞두고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은 3일 도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호 교과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교육공동체들과 탄핵 서명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김 교육감은 탄핵이유에 대해 "학생의 인권을 제한할 때는 근거조항을 국회가 만들어야 하지만 현행 법률 어디에도 학생부에 폭력사실을 기재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며 "이는 법치국가원칙을 유린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육감은 또 "학생부 기재 거부에 대한 감사를 벌이는 교과부 감사반원들이 교장을 상대로 '중징계하겠다', '재임용을 하지 않겠다'고 회유와 협박을 했다"며 "이는 명백히 형법상 협박죄에 해당된다"고 덧붙였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도 4일 기자회견을 통해 "교과부 장관은 교육파괴의 종결자임을 스스로 선언했다"면서 "교육자들의 양심을 모독한 책임을 지고 이 장관 스스로 퇴진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도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학교 폭력을 학생부에 기재하도록 한 교과부의 훈령은 법률적인 근거가 마련될 때까지 보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민주주의법학연구회도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폭력 가해사실의 학생생활기록부 기록 지침은 헌법과 법률에 반하는 위법한 것으로, 교과부는 학생부 기록 지침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교육희망네트워크, 민주노총, 전교조 등 8개 단체로 구성된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보류 교과부 보복특감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보복특감 공대위) 등 시민사회단체도 "학교폭력 가해사실의 학생부 기록 지침을 철회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해당 지역 언론들은 연일 특별감사 등으로 지역을 옥죄는 교과부와 맞선 지역교육청, 시민사회단체들의 반응을 주된 이슈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다르다. 주로 교과부의 입장을 주된 논지로 삼더니 7일 사회면 ''술 취해 후배 수십대 폭행' 학생부 안 적겠다니…'란 머릿기사에선 엄벌지상주의를 학교폭력에도 그대로 적용시켰다.
<조선>은 기사에서 "학교 폭력을 학생부에 기재하지 않겠다는 학교가 총 19곳인 것으로 집계됐다"며 "이 19개 학교가 학생부 기재를 거부하는 가장 큰 명분은 '학생 인권'이다"고 전제했다. 기사는 이어 "이른바 진보교육감들이 '사소한 싸움이나 우발적인 주먹다짐으로 학생의 인생을 망친다'고 주장하는데, 실제로는 그런 경미한 사안은 담임 재량으로 처리하고, 학폭위에서 잘잘못이 분명하게 판가름 난 심각한 사건만 학생부에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고 교과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소개했다.
그러더니 기사는 "학생부 기재를 둘러싼 갈등이 길어지면서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라며 교과부 입장을 대신했다. 기사는 한발 더 나아가 "학생부 기재를 거부한 19개 학교에 대해 일주일 정도 유예기간을 주고 계속 설득할 방침이지만, 이후에도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관련자들을 법대로 징계하겠다"고 또 다시 '엄벌'을 끄집어냈다.
이처럼 대선을 100여일 앞둔 지금 <조선일보>의 지면에선 '엄벌' 요구가 횡행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요구하는 수준보다 수위가 한 층 높다. 피해자나 피의자, 약자의 인격권 침해 최소화를 위한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조선>의 이러한 보도태도는 단순히 한두 사람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결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의존하게 될 권력의 향방과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게 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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