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딱 맞는 집은 어디에.
이민선
물난리를 겪으면서 세상의 냉정함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었고, 자기 권리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건설회사, 집주인 모두 자기들 이익이 우선이었다. 배려, 정의 같은 것은 '이익' 앞에서 맥없이 무너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건설회사는 자기들 잘못이 아니라고 발뺌하기에 급급했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배상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욕심 많은 일부 집 주인들은 미래에 나올 배상금이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치졸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세입자들은 건설회사와 집주인을 상대로 큰 싸움을 하고 나서야 배상을 받을 수 있었다. 피해를 당한 세입자들이 뭉쳐서 치열하게 싸우지 않았다면 배상은커녕, 물난리 원인조차 밝히지 못했을 것이다.
해서, 그 때부터 사람들을 믿지 못해 가재 눈을 뜬 채 살고 있느냐고? 그건 아니다. 난 두 번의 시련을 겪으면서 너무나 소중한 것을 얻었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난 지금도 사람을 잘 믿고, 사람 사귀는 것을 밥 먹는 일보다 더 좋아한다.
내게 가장 큰 믿음을 심어준 건 이사할 때 전세금을 반만 돌려준 바로 그 집주인이다. 그가 내 인생 최고의 집주인이다. 그는 약속대로 나머지 절반을 1년여 만에 돌려 줬다. 아직 IMF를 탈출하지 못한 힘든 시기였는데, 어떻게 그 돈을 마련했는지 모르겠다. 차용증 한 장 없기에, 안 갚아도 법적으로 하등의 문제가 없는 돈이었는데도 그는 약속을 지켰다.
물난리가 났을 때는 이웃의 소중함을 뼛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문을 두드려 나를 깨운 것도 이웃이었고, 무릎까지 차올라온 물을 밤새 퍼내준 것도 이웃들이다. 세 살 배기 딸아이를 위해 보송보송한 잠자리를 내준 것도 이웃이었고, 우리 가족에게 그날 아침밥을 차려 준 것도 이웃이었다. 그러니 어찌 사람이 믿음직스럽지 않겠는가!
부부싸움 금메달감인 3층 사람(남편)에 대한 선입견도 물난리를 겪으면서 180도 바뀌었다. 난 그를 벌레 보듯이 했었다. 가능하면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고, 어쩌다 마주쳐도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눈인사만 하고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사람은 오래 사귀고 볼 일이라고, 그 사람은 대단히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가장 열심이었다. 제 몸 축나는지 모르고, 허리 한 번 펴지 않은 채 쉴 새 없이 물을 퍼냈다. 그 밤에 어디서 구했는지, 양수기를 가져와 일을 마무리 지은 것도 그 사람이다. 아마 그 양수기가 아니었다면 우린 그 다음날 까지 꼬박 물을 퍼내야 했을 것이다. 그와 함께 물을 퍼내면서, 그 동안 그를 벌레 보듯한 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돌이켜 보니 세입자로 살아온 지난 세월은 참으로 잔인한 시간이었다. 그 힘든 세월을 무던히도 지나올 수 있었던 것은 가족,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며 다 잘될 거라는 열렬한 응원이기도 했다.
길이 보이지 않아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물난리가 났던 그날, 빗소리와 함께 들렸던 딸의 울음소리, 생명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때 그 좋은 사람들, 지금도 어디선가 환한 웃음으로 주변을 온통 환하게 밝혀주고 있겠지.
덧붙이는 글 | '나는 세입자다' 공모에 응모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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