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은미가 최근 자전적 에세이집 <이은미, 맨발의 디바>를 펴냈다.
남소연
"경쟁을 부추기는 편집방향이나 순위를 호명하고 몇 등이라 낙인 찍는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면. 또 뮤지션이 존중되고 다양한 음악이 순수하게 전달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 도입된다면. <나는 가수다> 참여를 고민해 볼 수 있다."사실은 나도 불편했다. 평소 내가 좋아했던 뮤지션이 <나는 가수다> 무대에만 서면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건 팬에게도 고통이었다. 자신의 순위가 어떻게 될까 걱정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전달될 땐 함께 긴장해야 하므로. 서열주의, 경쟁, 지긋지긋한 단어들. 마음 편히 즐겨야 하는 대중문화조차도 그 서열주의로 긴장해야 하다니. 서글펐다.
그런데 최근 자전적 에세이집 <이은미, 맨발의 디바-세상에서 가장 짧은 드라마>를 낸 가수 이은미씨가 내 문제의식에 동의했다. 그는 처음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이 시작됐을 때 "혼자서 소주 3병을 마셨다"고 했다. 너무 슬퍼서.
그는 지난 8일 <오마이뉴스>와 단독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가 저렇게까지 자극적인 장치를 하지 않는다면 음악도 안 듣겠다는 건가 생각했다"며 "대중이 음악을 듣고 좋고 나쁘고를 결정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프로 가수들을 1등부터 7등까지 줄 세우고 탈락시키는 장치는 불편했다"고 고백했다.
무엇보다 "저런 자극에 반응했던 대중들의 가슴을 어떻게 녹여 내 음악을 듣게 할 것인가 그것이 가장 큰 좌절이었다"며 "뭐가 그렇게 잘나 아직도 <나가수>에 출연하지 않느냐는 비판에 시달리지만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되는 게 싫어 마치 외나무다리 한 가운데 앉은 것처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맨발로 詩를 만나다>에 이은 두 번째 책 <이은미, 맨발의 디바>를 낸 그는 이 책을 통해 어릴 때부터의 개인사, 한국사회를 보는 시선, 소셜테이너의 사회참여 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자전적 에세이집 <이은미, 맨발의 디바-세상에서 가장 짧은 드라마> 책을 냈다. 이 책을 낸 동기는 무엇인가.
"1년에 몇 차례씩 출판제의를 받는다. 교재를 만들자는 제의도 있고. 매해 여러 출판사에서 많은 제의가 오는데 한 번쯤 내 삶을 정리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3년째 음악을 하고 있지만 음악에 대한 기록만으로는 별로 쓸 말이 없어서 이런저런 내 생각을 담았다. 무엇보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 멘토로 나가면서 대중가수를 꿈꾸는 아이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이 직업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너무 쉽게 달려드는 게 아닌가 싶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다."
- 이 글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석 달간 이 책을 쓰면서 어디까지 알려야 하나 많이 고민했다. 제 주변에 있는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고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을 많이 했다. 선의에서 한 말 때문에 누군가 상처 받거나 다른 여파가 생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그런 부분을 배제하니까 쓸 얘기가 별로 없었다. 후후."
- 매우 시크한 표지를 넘기니 프롤로그 제목이 '착하게 살자'였다. 그래서 한참 웃었다. 왜 이런 제목의 글을 첫머리에 올렸나.
"매일 되뇌는 말이다. 음악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저 같은 솔리스트는 그냥 혼자 하겠지 생각하시겠지만 전혀 아니다. 단독작업이 될 수 없다. 정말 많은 스태프가 저를 무대 위에서 빛나도록 돕는다. 그런데 인격형성이 덜 돼 늘 그들의 고충을 알면서도 날카롭게 대했다. 그런데 이제는 어느 정도 내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면서부터 날카로운 가시들이 누그러졌다. 내 가시에 다른 사람들이 찔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산 건 한 7년쯤 되는 것 같다. 더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은미의 프롤로그..."착하게 살자"- 20년 가까이 덮어둔 상처를 꺼내보거나, 불과 몇 달 전 일을 찬찬히 떠올리면서 불쑥불쑥 화가 나기도 한다고 했는데 요즘 사회적으로 가장 화가 나는 일은 무엇인가.
"사회적으로는 너무 많다. 제가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참 아득할 것 같다. 그래서 하야하고 싶어질 것 같다. 아무도 없는 산골에서 조그만 오두막집에 살며 먹을 게 없으면 없는 대로, 눈이 많이 와서 갇히면 갇히는 대로 그렇게 살고 싶을 것 같다."
- 국내 대표적 소셜테이너다. 책을 보니 어릴 때부터 봉사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한 것으로 나온다. 어떤 단체에서 활동했나."고등학교 1학년 때 '도덕 재무장'이라는 단체가 있었다. MRA 합창단. 각 학교별로 잘하는 아이들을 뽑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도 했다. 그때도 내가 솔리스트였다. 부른 곡목은 잔다르크. 보육시설을 방문해 노래도 하고 청소나 빨래도 돕고 방 정리도 함께 했었다."
- 요즘도 비슷한 사회봉사활동을 하시나.
"지금은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못한다. 늘 라이브 공연을 하고 밴드와 연습을 해야 해서 예전처럼 많이 다니지는 못한다. 대신 금전적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웃음) 기금 마련 콘서트에 함께 하고. 1년에 한두 차례 정도는 광주 백선바오로의 집을 가는데, 그곳은 정신지체장애인 수용시설이다. 원장 수녀님께서 콘서트 기금으로 이쪽 시설과 저쪽 시설을 잇는 구름다리를 만들었다고 좋아하셨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뿌듯하다.(웃음) 두 팔 걷어 부치고 쓸고 닦고 못한 지는 오래됐다."
-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었던 얘기는 무엇인가.
"불혹을 거치면서 내가 내 인생의 불혹을 사는 느낌이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 나머지 내게 주어진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것, 여태까지 살면서 맺은 신뢰에 여러분들이 배신감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 그런 게 가장 중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 자신에게는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고 타인이나 제 삶에 대해서는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이 들어간다는 것일 테고, 서로 가슴을 나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걸 그냥 정리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