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규 KBS노조 위원장(맨 오른쪽)과 간부들이 지난 2008년 8월 8일 오전 여의도 KBS본사에 들어온 사복경찰들을 향해 회사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권우성
이런 엉터리 서명운동의 결과는 생각만큼 압도적이지 못했다. 특히 피디와 기자들의 참여가 저조했다. 피디 직군은 10%도 서명에 참여하지 않았고, 기자는 40%에 그쳤다.
이에 반해 KBS 교향악단, 국악관현악단은 90% 이상이 서명에 참여했다(나중에 증언하겠지만, 나는 재임 중 KBS 교향악단의 독립재단을 추진했다. 교향악단 단원들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드세게 저항했다). 총무팀, 시설관리팀 등 행정지원 직군도 80% 이상 참여했다. 기술직군의 참여율도 높게 나왔다.
지역별로도 크게 차이가 났다. 노조 집행부의 '정연주 퇴진 올인'에 반대했던 부산, 경남 도지부, 충북 도지부는 서명참여를 거부했고, 대구, 제주, 진주, 김제, 원주 등은 거의 100%가 서명에 참여했다.
이런 결과에 대해 KBS 노조는 2008년 5월 19일자 '노보 특보'에서 "전체 조합원 가운데 70%를 초과한 높은 참여율을 보였다"며 "조합원들의 의지는 단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연주 사장은 KBS를 즉각 떠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조선일보>가 5월 21일자 기사에서 '정연주 사장 퇴진, KBS 노조원 70% 서명'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서 KBS 노조는 "여론조사와 달리 서명은 실명을 걸고 참여하는 만큼 정 사장 퇴진에 대한 조합원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오는 22일 조합원 대토론회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혀, 퇴진 압박을 더욱 강하게 할 것임을 예고했다.
실제 당시 박승규 노조위원장은 6월 말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정연주 퇴진 운동 계속... 더욱 강력하게 한다"고 밝혔다.
'정연주 퇴진 찬성' 27% 여론조사는 묵살당시 KBS 노조의 부도덕하고, 진정성 없는 행태는 그 뒤 다른 사건에서도 나타났다. 이 사건은 <한겨레21>이 폭로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공영방송 포위됐다'라는 표지 기사(2008년 7월 1일자 )에서 <한겨레21>은 KBS 노조가 5월에 '정연주 퇴진'과 관련한 여론조사를 했는데, 노조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자 이를 공개하지 않고 묻어버렸다는 내용이었다. KBS 노조는 한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국민 1천 명과 전문가 1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는데, 응답자 가운데 66%가 '정연주 사장의 남은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고 답했고, '사퇴해야 한다'는 반응은 27%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정연주 퇴진'에 올인해 온 KBS 노조는 이처럼 자신들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오자 이를 공개하지 않고 묻어버렸다는 것이다. <한겨레21>은 KBS 한 기자의 말을 인용해 "노동조합은 자신들의 의도와 전혀 반대되는 결과가 나오자,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 여론조사에는 'KBS 사장 선임구조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사장 선임에 국민이 참여해야 하는지' 등과 같은, KBS가 가야할 길과 사장 선임 방법을 묻는 건설적인 항목들이 있었음에도, '정연주 퇴진'과 관련하여 결과가 불리하게 나오자 KBS 노조는 여론조사 결과 자체를 아예 발표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겨레 21>은 "정연주 사장 진퇴와 관련한 조사 결과를 공개하기가 껄끄러워 전체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노동조합이 '정연주 사장 퇴진'이라는 목적에 매몰돼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박승규 위원장 "정연주 퇴진 운동 더욱 강력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