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
오마이뉴스 남소연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 여름, 때아닌 '네덜란드 열풍'이 불었다. 진원지는 노무현 대통령의 최고 정책참모인 이정우 정책실장. '청와대 안 개혁파'의 수장격이었던 그는 연일 "네덜란드 모델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이 실장이 언급한 '네덜란드 모델'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노조는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사용자는 노조의 권리와 제한된 범위 내에서 경영참여를 보장하자"는 것이었다.
'유연안정성'(Flexicurity)에 주목하던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벗어난 주장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 실장이 언급한 '노동자의 경영참여'가 발목을 잡았다. 자본과 보수진영은 네덜란드 모델을 노동자의 경영참여문제로 축소시키며 반대했다. 게다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마저 네덜란드 모델에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노사문제가 정상적으로 가려면 사용자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많은 사용자들이 아직도 노조가 없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새 노사모델이 필요하지만 청와대의 네덜란드식 모델이 해고를 가능하게 하고 임금인상 자제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동의할 수 없다."(이남순 한국노총 위원장)이렇게 네덜란드 모델은 제대로 검토되지도 못한 채 보수와 진보진영에서 모두 부정당했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중요한 사회경제정책을 협의하고 결정한다는 '사회협약 모델'이 '노동자의 경영참여' 논란으로 날아간 셈이다.
"적대와 불신의 노사관계 바꾸려고 네덜란드 모델 검토했다" 당시 네덜란드 모델 검토를 주도했던 이정우 전 실장(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노동자의) 경영참여라는 단어가 재계의 터부(taboo, 금기)를 건드린 셈"이라며 "네덜란드와 다른 한국의 노사관계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고 촌평했다.
"(네덜란드 노동계에는) 일부 급진적인 사고를 가진 분파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힘이 많이 약화돼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 대화와 타협을 내세운 온건파가 주류다. 한국과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은 노사정 중 '사·정'이다. 사고방식이 아주 다르다. 한국의 '사·정'은 계몽이 필요하다. 세계화를 얘기하고 수출도 많이 하면서 외국 실정에 어두운 '우물 안 개구리'다."
이 실장은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간사를 맡았다. 인수위원회 활동이 끝날 무렵 경제1분과에서 활동했던 허성관 동아대 교수와 이동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시사평론가 정태인씨 등이 노무현 당선자에게 "이정우 간사를 정책실장에 임명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렇게 청와대에 들어간 이 실장은 ▲노사관계문제 ▲부동산문제 ▲교육문제 등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고, 특히 '노사관계 개혁'에 가장 많은 관심을 쏟았다.
"한국의 노사관계는 적대와 불신의 노사관계다. 이것은 한국 현대사의 산물이다. 이것을 바꿔야 했다. 그래서 '이것을 네덜란드식 사회적 대화를 통해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한 것이다."이 실장은 재벌문제에는 '스웨덴 모델', 교육문제에는 '핀란드 모델', 노사문제에는 '네덜란드 모델'을 지지했다. 대체로 '북유럽 모델'을 선호해온 셈이다.
"1970년대 북해 유전이 발견돼 경제가 아주 좋아졌다. 그런데 그것은 '승자의 저주'였다. 석유가 발견된 이후 네덜란드의 통화가치는 절상됐다. 수출주도나라인데 수출이 안 됐고, 수출이 안 되니 경제가 나빠졌다. 경제위기가 오자 대립적이던 노사가 대타협을 했다. 그것이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이다."'바세나르 협약'을 통해 노사는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인상 억제' 등에 합의했다. 이후 경제성장률은 높아졌고,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은 낮아졌으며, 정부 재정적자도 감소했다. '성장과 고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이는 '네덜란드 기적'으로 일컬어졌다.
"한국의 비정규직은 '악성', 네덜란드 파트타임은 '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