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
유성호
- 액션키드라는 별칭이 있으신데요. 류승완표 로맨스 영화는 안 만드시나요?
"한때는 그런 생각을 했죠. 그리고 진지하게 써보려고 시작한 일도 있었어요, 한 2~3년 전 쯤? <이별하기에 2시간은 너무 짧아>란 제목의 영화였는데요. 전화통화 두 시간 하면서 '너 어디야?' 실제 2시간 동안 서로 엇갈리면서 벌어지는 '이별의 현재진행형'을 다뤄보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이게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이런 영화를 하기엔 현실이... 우리 마누라와 애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더라 이거죠. 하하하하. 현실에서 살기도 힘든데 영화까지? 아유 그건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아주 좋아하는 멜로드라마도 몇 편 안 돼요. 멜로영화 보는 걸 즐기지도 않고. 재밌어하지도 않고, 즐길 것 같지도 않는데 굳이 찍어야 하나? 막연한 가능성만 갖고 영화를 찍기엔 일평생 구경할 수 없을 만큼의 큰돈이 들어가는데, 그런 장난은 안 치는 게 맞다, 직업윤리상. 그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 지난해 영화인 225인 시국선언에 동참하셨잖아요. 촛불집회에도 나오셨고. 그런데 '촛불은 폭동'이라 악담한 미국산 쇠고기 협상의 장본인 민동석씨가 외교부 제2차관에 새로 낙점됐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사실 저는 정치적으로, 아니, 저를 아는 분들은 오히려 우파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고들 해요. 부분적으로는 사형제도도 찬성해요. 애한테 무슨 몹쓸 짓을 저질렀거나, 음식 갖고 장난친 인간들에 대해서는, 그 이면의 실체가 어떻더라도, 그 사실만으로는 찢어 죽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래요.
물론 평생 남편에게 구타당했던 일흔 할머니가 남편을 죽인 일, 남편이 죽고 난 뒤에도 한동안 몽둥이질을 했다는 기사를 읽곤 이런 건 법이 좀 융통성을 발휘해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은 합니다.
좌우를 떠나, 인간이 인간에게 갖는 최소한의 예의랄까, 상식이랄까 이런 것들이 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실제로 전 운전하다 화도 잘 내고 싸움도 잘 하고 그럽니다. 박찬욱 감독님은 제가 쓴 시나리오 읽다가 가끔 그러세요. 너 파쇼니? 깜짝 놀라 당장 바꾸기도 하지만, 제가 뭐 진보다, 보수다 그런 구분에 적합한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너 파쇼니?"- 촛불집회엔...
"그것도 뭐 특별히 진보적 의식을 갖고 한 행동이 아니에요. 그때가 제 영화 <다찌마와 리> 녹음할 때였는데, 촛불 인터넷 생중계를 봤어요. 그런데 어떤 여자아이가 깔렸는데 군홧발로 막 걷어차는 게 보이는 거예요. 광우병이고 뭐고 이건 인간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생각해서 나간 거지요.
설령 남자아이라도 군홧발로 걷어차면 안 되는데, 하물며 여자아이한테 그런 몹쓸 짓을 한다는 건 정말. 또 그 여름에 뭐하는 거냐고요. 전경 아이들은 두껍게 옷을 입혀서 흥분상태 만들어놓고, 아주 비인간적인 처사라고 생각했어요.
전경도 피해자고 시민도 피해자인 거지요. 술자리에서 만나면 모두 친구고, 영화관객이고, 또 내 고객이고. 하하. 그런데 그 순간, 손에 피를 안 묻히시고 우아하게 아침이슬 노래소리 들으며 눈물 흘리는 분이 계시더라 이거죠. 그래서 화가 났던 겁니다."
- 2002년엔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미선·효순을 위한 촛불집회에서 삭발도 하셨는데요."2008년 촛불, 2002년 촛불 모두 전 어떤 상황에서든 사람이 죽거나 다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가만 생각을 해보자고요. 살아 있는 사람이 그것도 어린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서 죽게 됐어요. 차라리 총에 딱 맞았거나, 대포에 맞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장갑차 바퀴에 짓밟혔다면 그 고통이 어땠겠습니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거 아닌가요?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인데, 국민 보호 좀 잘하라고 선거하고 대통령 뽑고 그러는 건데, 아니 그 꽃 같은 나이에 사람이 죽었는데, 무엇보다 누가 범인인지 확실히 아는데, 가족들에게 사과 한마디 안 해?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냥 한 아이의 부모로서, 시민으로서,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전 지금도 미제 좋아하고 담배도 말보로 피우고 그래요. 반미주의자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 사건은 도의적으로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봐요.
프랑스 가서 되게 부러운 건 메뉴판에 영어 없어도 당당하다는 거예요. 국민들에게 그 정도의 자존심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영어를 잘해서 꼭 살아남아야 돼, 영어 잘하려면 밤새 과외해야 돼, 어릴 때부터 해외연수 가야 돼, 국사를 영어로 배워야 돼, 이런 게 아니라 어떤 자존심, 그런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2008년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셔서 교육문제에 관심 많다고 하셨잖아요. 지난 6월 치러진 교육감선거에서 진보교육감들이 수도권에 포진했습니다. 교육에 변화의 바람이 불까요?"(웃음) 저는 제 경우를 일반화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제가 고졸이잖아요. 제 동생은 중졸이고. 그래서 군대도 안 갔잖아요. 우리 애들은 대안학교 다니는데, 인가가 안 나서 모조리 무학이에요. 하하.
그런데 저는 대학교육을 안 받고도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니까, 이런 자신감을 그냥 일반화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뭐가 맞다, 틀리다 하기 참 어려워요. 안타까운 건 매일 밤 12시가 넘으면 강남 대치동에 아이들이 좀비처럼 걸어 다닌다는 거지요.
국사교육보다 영어교육이 더 중요한 건가? 그런 생각이 들고요. 철학과 윤리를 공부하는 것보다 토익점수를 더 많이 따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 생각해요. 저도 영어공부 하지만, 철학이 형성돼야 할 시기에 사고력과 상상력을 길러야 할 시점에 암기력만 요구하는 교육이 맞는 건가? 그런 교육이 좀 바뀌면 좋겠다, 이런 생각은 합니다."
"타인의 취향이 존중받는 사회였으면"- 어린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나요?"얼마 전 제가 한 초등학교에 일일교사를 하러 간 일이 있어요. 제일 많이 나온 질문이 영화감독의 연봉은 얼마인가요? 와~ 저 되게 놀랐어요.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었는데, 우리 때와 비교하자면 대개 과학자, 슈바이처, 피아니스트 대개 꿈이 이랬잖아요. 그런데 대기업, 공기업 취업. 이런 게 맞는 건가요?
<부당거래>도 그렇지만,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회구조라면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는 사건이 벌어지잖아요. 따지고 보면 <부당거래>는 헛소동이에요. 한 발만 떨어져서 보면 <부당거래>는 완전히 헛소동극이지요.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좀 더 가치 있는 삶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는 게 더 맞는 것 같은데."
- 영화감독 말고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원칙이랄까, 그런 건 뭐가 있을까요? "개인이 좀 더 존중받고, 타인의 취향이 존중되며, 인간에 대한 예의가 존중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집단과 단체에 숨은 개인들이 어떤 개인을 짓밟는 건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타진요, KBS, 타블로와 김미화. 뭐만 하면 좌익이라고 몰아붙이는 일들, 그건 진보도 마찬가지 같아요. 몰아세우기 그런 건 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권력이 좀 분산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기업이 체인들을 만들어서 자그마한 구멍가게들을 공격하는 것들, 동네 구멍가게의 역할까지 다 빼앗아가는 것. 나쁘죠. 다양성 안에서 일치? 그런 게 좀 됐으면 좋겠어요. 전문가들, 장인이 존중받는 문화였으면 좋겠고.
결과적으로는 결국 우리가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서 기인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비롯된 잘못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그 점에서 우리나라 국사교육과 역사인식이 강화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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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좌파? 박찬욱 감독은 나더러 '파쇼'래요 검찰청 불쾌하세요? <공공의적2>도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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