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연천 최전방부대 GP총기난사로 사망한 8명의 병사들의 합동영결식이 지난 2005년 6월 25일 오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에서 유가족과 동료부대원들을 비롯한 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이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서 고인들의 영정앞에 헌화하고 있다.(자료사진)
오마이뉴스 권우성
2002년 연평해전까지 갈 필요도 없다. 기억을 2005년으로 돌려보자. 그해 6월 19일 경기도 연평군 최전방 육군 28사단 GP에서 총기 난사 사고가 벌어졌다. 군인 8명이 숨지는 참사였다. 가해자는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는 김아무개 일병이었다.
당시 군은 모든 책임을 김아무개 일병에게 돌렸다. 군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사회 부적응자가 입대해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렇게 결론짓는 게 군에게는 가장 편했다. 책임을 면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름길을 가기 위해 군은 사고 현장에서 생존한 군인들을 적극 활용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4일 만이었다. 군은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 생존자들을 동참시켰다. 그리고 그들에게 직접 이야기하도록 했다.
당시 생존자들은 "(김 일병은) 선임들이 혼을 내면 욕을 했고 반항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그래서 더욱 혼이 났고 동기다 보니 혼나는 모습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또 한 사병은 "오히려 지금 다른 나라에 가 있는(사망한) 선임들이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한 착한 사람들이었다"며 "사고 며칠 후 김 일병이 선임들의 언어폭력에 의해 사건을 저질렀다는 얘기를 듣고 눈물이 났으며 우리 모두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생존자들의 말을 근거로 군은 "친근감의 표시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을 김 일병은 내성적 성격 때문에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심정적인 충격을 느낀 것 같다"고 최종 발표했다.
그렇게 '공공의 적'은 김 일병 하나로 모아졌다. 사건은 그렇게 역사로 묻혔다. 하지만, 생존자들의 고통은 이어졌다. 생존 병사 28명 중 13명은 사고 후 6개월여 만에 의병 제대했다. 이들 중 일부는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 또 사고 후유증으로 자살을 시도한 이도 있었다.
결국 군은 자신들 책임을 면하기 위해, 혹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정신적 외상을 당한 병사들을 사고 발생 4일 만에 전면에 내세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