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기도구를 가져와서 적는 수강생들이 많았다. 수강생들은 강사의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워 집중했다. 강연회에 많이 다녀 보았지만, 이런 반응을 보여준 수강생들은 처음이다. 강사와 스탭들도 이 부분에서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오승주
김병준 교수의 장하준 읽기 부분이 강좌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차이점을 말하는 대목이었다. 왜냐하면 경제학자와 정책결정자(또는 정책참여자)의 차이점을 읽게 됨으로써 장하준 교수가 주는 메시지의 선을 분명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는 과거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현상을 진단하고 조언을 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과거의 분석을 통해 문제점을 명쾌하게 지적하고 그에 대한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학자의 덕목은 학문적 분석에 머무른다.
하지만 정책결정자는 비록 경제학자처럼 과거의 데이터와 경험이라는 자료를 분석하지만 결국 '대안'이나 '정책'이라는 방식으로 수렴되기 때문에 경제학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경제학자가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선택'의 순간을 매번 맞이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경제학자는 경제정책에 대해서 비판적일 수밖에 없고, 정책결정자는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 김병준 교수와 함께 읽어본 '장하준'은 경제학자가 아니라 경제학자와 정책결정자 간의 한판 대결이면서 동시에 공통의 문제를 모색해보는 시간이었다.
장하준 교수는 제도주의 경제학자이다. 제도주의 경제학이란 인간의 행위, 사회에 제도가 미치는 영향과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태생적으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장하준 교수는 제도주의 이론을 한국에 적용하기 위해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을 대입했는데, 참여정부와 생각이 많이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김병준 교수는 장하준 교수가 제도와 국가정책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에 비중을 많이 두기 때문에 사회문화적인 부분에 대한 분석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국가가 총칼 진압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관리했고, 갖가지 특혜와 국가 보증, 일방적인 정책 금융으로 기업의 위험부담을 과도하게 책임졌을 뿐만 아니라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켜 "공장이 망해도 땅값이 오르게" 만들었다. 이는 1945년부터 1975년까지 미국의 이른바 '황금시대'와 비교했을 때 단적으로 차이가 드러난다. 미국은 가장 높은 정도의 소득 균형을 달성했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냈고 전보다 더 많은 경제적 안정을 만들어냈다. 때문에 미국인들은 민주주의와 정부를 높이 신뢰했다. 이 과정을 보면 한국의 이른바 '황금시대'라 일컬어지는 박정희 시대는 왠지 작위적이고 왜소해 보이기까지 하다.
김병준 교수가 이런 비판을 보이는 것은 학자의 견해와 달리 정책결정자는 많은 이해관계자를 아우르는 정부의 조정 능력을 극적으로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한국인의 특성이나 잠재력 등 장하준 교수가 세심히 관심을 갖지 않는 미시적인 요소들을 활용해야 불확실한 미래에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간 은유적이기는 했지만 김병준 교수의 '어머니 역할'과 '아버지 역할'의 구분은 인상적이었다. 참여정부가 추구하고 정책에 비중을 많이 실은 것은 '어머니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역할이란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고, 지나친 경쟁사회에서 패자부활전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즉 산업정책보다는 사회, 문화적 역할을 중시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에 패자부활전이 없어져 가고 있다. 한 번 넘어지면 아들도, 손자도 탈락되게 생겼다. 한 번 직장에서 떨어져 나오면 재기할 기회는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하준 교수가 다소 '아버지의 역할'에 비교 우위를 두는 것이 아닌지 물었다. 아버지의 역할이 옳으냐 어머니의 역할이 옳으냐는 논쟁은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어떤 처방을 내리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고민해보자는 제안으로 들렸다.
장하준, 김병준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 시급한 처방의 우선순위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을 달리하지만, 궁극적인 방향에서는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장하준 교수의 한 인터뷰에 대해서 김병준 교수는 전적으로 동의하며 매우 훌륭한 생각이라고 칭찬했을 정도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경제학자들이 접점을 찾은 모습을 본 것 같아 반가웠다.
"200년 전에 노예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100년 전에 여자가 투표권을 달라고 하면 무시당했고요. 50년 전 후진국들에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테러리스트가 되어 감옥에 갔죠. 20년 전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을 철폐하고 만델라가 풀려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단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가 계속 발전을 합니다. 그러니까 대안이 무엇인가 찾고 이야기를 해야죠.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장하준 교수의 한 인터뷰) 덧붙이는 글 | <노무현 함께 읽기>의 기획 후기로서 블로거뉴스, 아고라, 알라딘 등에 동시 연재합니다. 매주 일요일 첫 리뷰 기사를 올리고 나서 목요일 강독회에 대한 리뷰, 피드백, 강독을 포함한 후기는 금요일에 올릴 예정입니다.
쾌도난마 한국경제 - 장하준.정승일의 격정대화
장하준 외 지음, 이종태 엮음,
부키, 2005
국가의 역할 - 장하준이 제시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발전과 진보의 경제학'
장하준 지음, 황해선, 이종태 옮김,
부키, 2006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 장하준의 경제 정책 매뉴얼
장하준.아일린 그레이블 지음, 이종태.황해선 옮김,
부키, 2008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공유하기
노무현 대통령의 16년 파트너와 함께 읽은 장하준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