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치고 써레질 끝낸 논바닥에 찰람찰람 물이 들어찼습니다. 찔레꽃 피고 오동꽃 떨어지자 곧 모내기가 시작되었어요. 오와 열을 맞춘 어린 모들이 흔들거리며 뿌리를 내립니다. 그 층층 다랭이 호수 속에는 나무와 풀 그림자가 들어있고 해와 달과 산과 구름이 한껏 돛폭 부풀려 서쪽 바다를 향하고 있군요. 해오라기 한쌍 노을에 되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묵언정진에 들어갔으며 바람은 삽을 씻고 돌아가는 늙은 농부의 주름살 계곡으로 쉼 없이 불어갑니다. 흙 묻은 장화를 털고 담배를 빼어 문 황토빛 얼굴에는 땅을 탓하지 않고 평생 삶을 경작해 온 흉그런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많이 굶고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밥그릇에 대한 경건한 기도가 들어있습니다. 무엇보다 서럽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편에 서려 했던 당신의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당신은 누구보다 한 그릇 밥 앞에 눈물 흘려 본 사람이기에, 밥이야말로 얼마나 치사하고 위대한 참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 어둠 속에서도 거짓말할 줄 몰랐던, 진실한 말은 오히려 서툴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 준 당신이기에, 어떤 바닥이든 가리지 않고 완벽한 수평을 유지하려는 물의 평등한 말씀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당신은 참 말을 하는 사람이었지요. 왜냐하면 참말만 골라 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좋은 학교 나온 별 볼일 있는 사람들이었거든요. 당신의 현장 언어를 책상물림들이 알아듣지 못한 건 당연하지 않겠어요. 현란한 말이나 미사여구는 당신에게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했어요. 바보라는 별명, 그거 '바로 보다'에서 나온 말 아닌가요. 바로 보는 사람은 늘 손해 보기 마련입니다. 이익이나 대차대조표를 그렸다면 진즉에 때려치우고 떠났을 것입니다. 농부만큼 바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손해 나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질줄 알면서도 싸우는 선수가 어디 있겠습니까. 삶에서 이기려고 기를 쓰고 덤벼든 우리가 당신을 떠밀었습니다. 더 넓은 아파트, 더 큰 자동차, 더 많은 돈벌이를 위해 사글세를 쫒아내고 자전거와 손수레를 깔아 뭉개고 장애우와 비정규직을 쫒아낸 우리가 등을 떠밀었습니다. 더 편안한 삶을 위해 당신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렸습니다. 이명박 정권이나, 한나라당, 검찰이나 족벌 언론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그들은 딴나라 사람들입니다.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멀쩡한 관절을 수술하고 글로벌 세계 리더를 키우기 위해 이중국적을 소지하고, 자연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위장 전입하여 농지를 불법으로 사들이고, 논문을 표절하고, 노동자의 고혈로 부를 축적하고도 세금을 포탈하고 비자금을 조성하여 끼리끼리 나누고 먹고, 돈이 된다면 바퀴벌레도 수입하고, 처녀불알도 구워삶아 팔아넘기는, 재벌들을 비롯하여,전국에 걸쳐 수십 채의 아파트와 상가를 소유하고 있는 판·검사, 장관, 국회의원, 대학교수들은 우리와 피가 다른 사람들입니다. 최고급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영어 몰입식 교육을 받고, 30만원이 넘는 비누곽과 천만원이 넘는 목욕탕 부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철거에 반대하며 불에 타 죽은 사람들을 거들떠보기나 하겠습니까. 그들은 뇌, 척수, 신경세포가 우리들과 다른 사람들입니다. 이 머슴들을 지키기 위해 주인 앞에서 시위를 하는 검찰과 경찰은 얼마나 충실한 푸들입니까. 그들의 모국어는 영어입니다. 그들의 헌법은 강자에겐 아부하고 약자에겐 무자비한 폭력으로 다스릴 것, 밖으로는 강하고 안으로는 한없이 관대할 것, 이것이 전문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광주학살 이후에도 서정시를 받아썼던 시인들은 당신을 버렸습니다. 노벨문학상 한번 받아보려고 1%의 부자들에게 구걸하고 있는 작가들이 당신을 죽였습니다. 바야흐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타박하는 시대입니다. 제 눈의 들보는 걷어내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눈을 의심하는 서월입니다. 저 하늘에 계신 하눌님과 땅속이 천국인양 헤집고 노는 땅강아지에 이르기까지 삼천대천세계에서 헛된 죽음은 없는 거지요. 당신이 흘린 피는 물이 되고 불이되고 공기가 되어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들의 몸속으로 스며들 것이니, 여름 비바람, 가을 무서리, 겨울 폭설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흐르고 세상이야기가 다 쓰여지고 난 뒤에도 새로운 이야기가 지금, 다시 쓰여지고 있듯, 세상 사람들 다 죽어 흔적없이 사라진다 해도 새로운 생명은 어디선가 꿈틀 일어서듯, 당신의 참 말은, 당신의 참 행동과 실천은 끝내 다시 시작하는 후세들에게 뿌리내려 울울창창할 것입니다.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뛰어내린 고드름처럼 , 삶이란 올가미 앞에 절대 고독을 견디며 매달려왔던 당신의 손을 가만히 만져봅니다. 거친 삶을 살아왔지만 뜻밖에 부드럽군요. 당신이 흘린 눈물, 세상 골목을 빠져나와 아픈 틈을 메우고 강물을 휘돌아 지금 마악 바다와 만나 뜨겁게 끌어안는 모습이 보입니다. 눈물은 말이 태어나기전, 어머니가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모국어라는 것을 믿습니다. (이 시는 유용주 시인이 고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쓴 조시(弔詩)로 28일자로 한겨레 신문 2면에 게재되었으나 지면 사정상 원본이 그대로 실리지 못했으나 유시인과 한겨레신문의 동의를 받아 원문 내용을 그대로 싣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