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갈현동 영생원에서 탤런트 故최진실의 운구행렬이 영정을 든 동생 최진영을 따라 화장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유성호
2008년 한해는 연예계 유명배우들의 자살과 사고와 돌연사 등으로 비극적인 사망소식이 잇따라 일어나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 사건들 중에서도 유례없는 메가톤급 충격을 안겨준 사건은 최진실의 사망소식이었다. 20년간 최정상급 배우로 사랑받은 최진실의 죽음은 너무나도 뜻밖의 사건이었고 전 국민들을 충격과 슬픔에 빠뜨린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날도 나는 남편이 출근하고 난 뒤, 대충 다른 일을 하고 책상 앞에 앉아 인터넷을 켰다. 2008년 1월 2일 새벽, 국민 여배우요 만인들의 연인이었던 최진실이 자살했다는 보도가 그 날 이른 아침 인터넷 신문의 톱 면에 올라있었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최진실'이라는 이름 석 자와 '자살'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최진실이라고? 설마 배우 최진실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생각하며 넘어갔고, 곧 다른 신문을 검색해보았다.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정말이지 믿기지 않는 사실이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내 눈으로 확인하며 보고 있는 그 순간에도 나는 믿을 수가 없어서 도리질 쳤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사람을 다시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워서 나는 그동안 한 마디의 말도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잘 못 본건가, 다른 사람이겠지, 하고 생각하고 다른 신문을 검색했다. 역시 똑 같은 보도가 나 있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았다. 그제야 배우 최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나는 뭐라고 딱히 형용할 길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나는 신문마다 나 있는 톱기사, 이 충격적인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기사를 접한 국민들 모두가 나와 똑같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활달하고 악착스러운 연기를 해온 이미지 때문일까. 그렇게 약한 여자가 아닐 텐데, 도대체 하룻밤 상에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나는 충격과 더불어 슬픔에 빠져서 책상 앞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기사를 읽어나갔다.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은 계속해서 내 볼을 타고 내렸다. 이혼 후 혼자서 그동안 두 아이를 씩씩하게 잘 키워왔던 최진실은 수많은 싱글 맘에게 적지 않은 용기를 주었을 것이었다. 그녀의 죽음은 또 많은 이들에게 무력함과 절망감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슬픔을 딛고 오뚝이처럼 일어나 재기를 꿈꾸었고, 어렵게 또 그렇게 해 왔던 그녀의 돌연한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공황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또 아직도 우리사회에 여자가 홀로 선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벽에 부딪치는 힘들고 어려운 현실인지를 알게 했고, 장난으로 던진 돌이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했고, 많은 것을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
80~90년대를 풍미했던 대배우 최진실의 죽음은 전 국민의 슬픔이었다. 나는 3일 넘게 믿을 수 없는 최진실의 보도를 접하면서 울고 또 울었다. 그렇다고 내가 배우 최진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럴 것이 언제나 가깝게 느껴지는 친숙한 배우였다. 우리는 과거이든 현재든, 그녀의 연기를 보고 웃고 울면서 또 세월을 나지 않았던가 말이다. 눈물, 콧물 흘리다 못해 코를 탱탱 풀어가면서 두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너무도 가여워서 울었다.
아직 살아갈 날들이 창창한데 그 한 목숨을 얼마나 괴로웠으면 제 한 목숨을 스스로 버렸을까. 너무도 가여웠다. "누나 누나"하며 누나의 영정을 끌어안고 우는 최진실의 남동생 최진영의 모습은 마치 엄마 잃은 고아처럼 막막하고 슬프고 가여웠다. 여느 자살과 다름없이 최진실의 죽음은 또 다른 모방 자살자들을 낳았다. 최진실의 자살은 대한민국 전 국민들을 우울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베르테르 효과, 자살 공화국자살은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이슈 중 하나가 된지 꽤 오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은 한 번 이상은 자살을 생각하지만 예전엔 목숨을 버리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너무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현상이다. 자살 원인은 또 다양하다. 어느 지면에서 보니까 한국 자살예방협회가 지난 2005년 전국 1500명을 대상으로 적어도 한번이라도 자살을 생각해 본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이 3명 중 1명꼴인 33.4%였다고 한다.
1987년 8106명 선이던 자살자는 외환위기 때인, 1988년 1만2458명으로 급증했고, 그 이후로도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는 24.7명(2005년)으로 최고수준이라는 것이다. 한국 형사 정책 연구원이 지난 10년간 1,282건의 자살 원인을 조사한 결과, 우울증(20.8%), 심리불안(20.6%) 등 정신과 및 정신과 관련 질환으로 인한 자살이 41.4%였다고 한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자살자들까지 감안한다면 더 많을 것이라고 한다.
자살의 어원은 라틴어의 sui(자기자신을)와 cædo(죽이다)는 두 낱말의 합성어라고 한다.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 것이다. 정치계, 경제계 등의 사망소식과 연예인들의 잇단 사망소식은 우리 사회에 많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유명인의 자살을 모방한 '베르테르 효과'가 전염되는가하면, 국민들에게 정신적 우울감을 갖게 만들기도 했다. 최진실의 죽음은 또 사이버모욕죄인 최진실법 도입을 놓고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우리의 가치는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최진실의 죽음은 이혼 후에 얻은 우울증 등 많은 이유가 있다. 그 중에 악플도 한 몫을 한 것 같다. 요즘 우리사회를 보면서 무책임한 악성루머와 악플이 익명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사회를 휘젓고 있음을 보며 통탄스러울 때가 많다. 무책임한 말을 아주 쉽게 쏟아내는 것을 볼 때, 섬뜩할 정도다. 인격적인 존재로서 다른 인격체를 가차 없이 심판의 잣대위에 올려놓고 언어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장난으로 던진 돌이 한 인격체를 절망과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까닭이다. 최진실의 죽음이 이혼 후, 우울증을 앓아온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것이 밝혀지자 대한민국 남편들은 혹시 자신의 아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살펴보게 되는 계기를 주었고, 대책 없이 마구잡이로 쏟아내던 악플(악의적 댓글)문화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악플이 줄어들고 '찌라시'도 줄었다한다.
유명 연예인들의 잇단 사망소식과 수많은 사람들의 자살소식은 국민들에게 상실감과 함께 우울한 정서를 많이 안겨주었던 것 같다. 일명 모방자살인 베르테르 효과가 잇따랐고 사회적으로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우리 각자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며 가치 있는 존재인가를 일깨우는 글이다.
'한 강사가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20달러짜리 지폐를 들고 물었다.“이 20달러짜리 지폐를 갖고 싶은 분 있습니까?"여러 명의 손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강사가 말했다."드리기 전에 할 일이 좀 있습니다."그는 지폐를 구겨 뭉치고는 말했다."아직도 이 돈을 가지실 분?"사람들이 다시 손을 들었다."이렇게 해도요?"그는 구겨진 돈을 벽에 던지고, 바닥에 떨어뜨리고, 욕하고, 발로 짓밟았다. 이제 지폐도 더럽고 너덜너덜했다. 그는 같은 질문을 반복했고, 사람들은 다시 손을 들었다."이 장면을 잊지 마십시오."그가 말했다."내가 이 돈에 무슨 짓을 했든 그건 상관없습니다. 이것은 여전히 20달러짜리 지폐니까요. 우리도 살면서 이처럼 자주 구겨지고, 짓밟히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모욕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인생은 등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