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사준 곰 인형을 안고 있는 아이들. 왼쪽이 지원이. 오른쪽이 다설살백이 시광이다.
이유하
지원이의 집은 학교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 문을 열고 들어서니 지원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제주도까지 가서 고기를 잡는 아버지 김호영(35)씨는 두 달에 한 번씩 집에 오는데, 내가 찾아간 날이 마침 집에 오신 날이었다. 팔에는 거친 20㎝가 넘는 길고도 깊은 상처들이 줄지어 있었다. 상처에서 파도가 느껴졌다.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건 묵묵부답. 검게 그을린 바다 사나이였다.
하지만 아이들의 부름에는 살뜰하게 반응했다. 건전지가 떨어진 장난감을 보자 아무 말 없이 드라이버를 꺼낸다. "아이들 많이 못 봐서 섭섭하시겠어요"라는 나의 물음에 그저 고개만 떨어뜨린다. 왜 보고 싶지 않을까.
다음 달에 있을 지원이 생일 선물로 미리 커다란 곰인형을 챙겨온 아버지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지원이와, 같은 학교 유치원생인 시광이는 곰 인형에 올라타고 구르며 장난을 쳤다.
허리가 좋지 않아서 고기잡이가 어려울 때도 있지만, 아이들 생각하면 쉴 수가 없다며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목소리였다. 평생을 도시처녀로 살아오다가 눈 맞은 남자와 어찌어찌 섬까지 오게 되었다는데, 그 삶이 힘들 법도 하지만 한산도가 좋다고 했다.
검게 그을린 아이들이 눈빛이 초롱초롱했다아름다움 섬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면서 검게 그을린 아이들은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아이들은 숙제공책을 폈다. 책상이 없어서 바닥에 엎드려서 하는 숙제지만 진지했다.
하소분교의 8살 난 지원이는 숙제도 빨래도 청소도 알아서 척척이고, 유치원에 다니는 6살 난 도현이는 벌써 3명의 동생을 둔 똑순이다.
뒤늦게 마음을 연 지원이의 동생 시광이(5)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 중 8할이 뛰고 구르는 통에 정신이 없었지만 좋았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처음엔 외부인을 경계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지만 그 안에는 따스함이 담겨 있었다.
학생이 단 세 명뿐인 '초미 니학교'지만, 그보다 더 많은 유치원생과 새로 태어난 아이들이 있는 한, 이곳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