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예에게 '선크림'을 받은 김수 선생님
이정환
제자들의 소원을 전해들은 김수 분교장의 얼굴 역시 어두워졌다. 그는 "혜택을 많이 받으면 그만큼 소원도 다양할 텐데, 다른 상황을 접해보지 못한 아이들이라서…"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다만 '컴퓨터 소원'에 대해서는 아이들의 '어른 친구'다운 해법을 제시했다.
김 분교장은 "아이들이 컴퓨터를 통해서만 또래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보니까, 컴퓨터만 붙잡고 살게 되고 오히려 활동량이 줄어들 수 있다"면서 "또 워낙 이곳이 겨울에는 바람도 많이 불고 춥다 보니까, 방학 기간에 아이들이 하루종일 방 안에만 박혀 있는 것도 같이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그래서 김 분교장은 오히려 컴퓨터보다는 마을 체육관이 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의견을 내놨다.
그는 "강당을 겸해서 겨울에 아이들이 따로 운동을 할 만한 시설이 갖춰지면 좋을 것 같다"면서 "그렇게 되면 별다른 문화 시설이 없어 약주를 많이 즐기시는 어른들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빠를 잃은 은서...MP3 플레이어는 '자랑거리' 아닌 '현실'고마운 분들임에 틀림없지만, '그 이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 역시 현실이다. 부모님들은 이미 체념한 듯했다. 아이들의 '소원'을 들려주자, 4학년 은서 어머니 황희숙(51)씨의 첫 마디는 "그런 게 되나요?"였다. "학생들을 어떻게 늘릴 수 있겠느냐"고 했고, "굴뻥 말고 모래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에도 역시 "그게 될까요?"란 반문이었다.
다만 은서가 남들에게 기죽지 않고 커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황씨는 "아무래도 아빠가 없으니까, 좀 더 외로움을 타지 않겠냐"면서도 "그동안 남한테 기 죽지만은 않게 하려고 애썼다"고 힘줘 말했다. 3형제 중 늦둥이로 태어난 은서 나이 다섯 살, 그때 아빠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은서의 '소원'이 보다 생생하게 다가왔다. 아마 컴퓨터나 MP3 플레이어는 은서에게 단순한 '자랑거리'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것들은 '또 다른 친구들'에 가깝다. "집에 있으면 너무 심심하고", 풍도와 인천을 왕복하는 유일한 교통수단, "왕경호 배에 혼자 있을 때는 정말 심심한" 것이 현실이니까.
아마도 은서는 '친구 늘리기'가 이미 꿈같은 이야기란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컴퓨터나 MP3 플레이어 같은 '차선'을 적어냈고, 막내 다예를 "안 무겁다면서 매일 업어 주는 것"이 은서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은서가 매일 만날 수 있는 친구는 소영이와 다예 뿐이니까.
▲1학년 임다예 어린이가 혼자 하교하는 모습
이정환
먼 훗날, 이곳에서 '꿈'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은서에게는 "정말 심심하고, 어지럽고, (선실 바깥에 나가면) 춥다"는 왕경호였지만, 나는 왕경호를 타고 풍도에 오면서 "기대감이 대폭 상승했다"고 적었다. "배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목적지는 사람 '손'을 덜 탄 곳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행자의 생각이었다.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사람 '손'을 더 많이 탔으면 '좋겠다'. 나홀로 입학생마저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중에 김은서씨, 최소영씨 그리고 임다예씨가 언제라도 이곳 풍도에서 '나의 꿈'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중에 커서 꼭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하루 하루를 보내고 싶고, 그리고 나중에 그림을 잘 그리고 싶고, 나중에 그림을 그리고 나서 아주 아주 나중에 내가 늙어서 내가 이렇게 그렸구나 하는 그런 추억을 기억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나만의 그림을 모아서 아주 큰 전시회를 열고 싶습니다. 그래서 꿈이 있는 분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주고 싶습니다." (나의 꿈 : 미술선생님, 이름 : 4학년 김은서)"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습니다. 제 노래를 통해서 불행한 사람에게 행복을 찾아주고 싶습니다." (나의 꿈 : 가수, 이름 : 3학년 최소영)"선생님이 돼서 아이들을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꼭∼ 선생님이 되겠습니다." (나의 꿈 : 선생님, 이름 : 1학년 임다예)
▲왼쪽부터 4학년 김은서, 3학년 최소영, 1학년 임다예 어린이
이정환
"이렇게 나가면 폐교는 물론 섬까지 없어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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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중도동에 속한 풍도는 '야생화의 보고'로 잘 알려진 섬이다. 이 때문에 특히 각종 야생화가 만발하는 매년 봄에는 섬을 찾는 사진작가들이 많다고 한다. 다만 아이들이 얘기한 것처럼, 모래사장이 없고 '굴뻥'이 많기 때문에 섬을 찾는 피서객은 그리 많지 않다.
배편도 하루 1번 밖에 없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그동안 풍도가 경기도 소재지면서도 '사람 손을 별로 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풍도에는 현재 115명이 살고 있다. 60여 세대, 80% 정도가 노인층이다. 30대에서 환갑까지 '장년층'이 "열댓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어린이들 숫자 또한 줄어들 수밖에 없다. 1983년 풍도에 개척교회를 세운 김정순(54·여) 목사는 "처음 섬에 왔을 때만 해도 초등학생이 21명이었고, 미취학 아동까지 합하면 30명 가까이 됐다"면서 "그 아이들만 데리고 개척교회를 시작했을 정도로 큰 힘이 됐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김 목사는 "무엇보다 폐교가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학교라도 있어야 동네에 아이들이 보이고 그래야 사는 맛이 있게 마련"이라면서 "갈수록 아이들이 줄어들면서 마을에 활기가 없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풍도파출소 분소장인 다예 아빠 임유정씨도 "인근 유인도에서는 그나마 유일하게 학교가 있는 섬인데, 정말 큰 일"이라며 걱정했다. 그는 "근무기간이 끝나 우리 가족이 섬을 나가는 순간에 폐교가 될 수도 있다"며 "그렇게 되면 섬 '중심'이 죽는다는 이야기고, 젊은 사람들은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 풍도분교장도 "풍도에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폐교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었다"면서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나가면 학교가 없어지고 나아가 섬들까지 없어지게 될 것(무인도화)이란 생각을 하게 되더라.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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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위 슬라이드 쇼는 blog.ohmynews.com/bangzza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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