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한-미 쇠고기 협상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에서 학생들이 촛불을 높이들고 있다.
유성호
중3 딸이 지난주 금요일(5월 2일) 아침 식사 때 말했다.
"아빠, 내 친구도 청계천에 나갈 거래요. 이명박 대통령 반대하는 촛불집회에요."
- 왜?
"그 친구 말이 광우병 걱정 때문에 전날 한숨도 못 잤대요. 우리 정부 태도가 너무 열 받는대요."
나는 그날 아침 우리 딸이 전해준 '중3 여학생의 민심'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중3이 벌써 그런 정치의식을? 참 별난 아이구나, 뭐 그런 정도였다.
그런데 그날 저녁, 나는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광우병 우려 미국소 수입 반대를 위한 '촛불문화제'가 처음으로 열린 그날, 청계광장에는 2만여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이날 문화제를 생중계한 <오마이TV> 화면에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도 상당수였다. 기껏해야 1천명정도 모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현장에 나가 있는 <오마이뉴스> 취재기자는 "모인 숫자도 예상외였지만, 이명박 정부에 대한 어린 학생들의 비판의 강도도 예상 외였다"고 전했다. 집회장에 직접 참석하지 못한 젊은 네티즌들의 온라인 참여도 뜨거웠다. <오마이TV> 생중계를 본 사람들이 하루 수십만 명에 달하는 등, 지난 대선정국 때보다 많았다.
다음날(5월3일, 토요일), 나는 두 번째 촛불문화제에 직접 나가봤다. 낮에 회사가 주최한 축구대회에 참여한 뒤여서, 트레이닝복 차림에 배낭을 메고 청계광장에 나갔다. 참여도, 취재도 아닌, 그냥 구경할 셈이었다.
저녁 6시 40분경. 동아일보사 앞 청계광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경악했다. 이미 자리를 잡은 수천명의 집회 참가자들, 그들의 면면과 표정과 구호는 전에 그 광장에서 봤던 것들과 달랐다.
나는 광화문 촛불집회에 익숙한 사람이다. 조중동의 분류대로라면 이른바 '좌파 386'이다. 2002년 효순, 미선 촛불집회, 2004년 탄핵반대 촛불집회를 주도했다는 '좌파 386'에 속하는 세대다. 그런데, 중3딸을 둔 좌파386 아빠는 2008년 봄, 청계광장의 촛불들에 경악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적어보겠다.
'좌파 386 아빠'가 놀란 3가지하나, 촛불을 들고 목청껏 "이명박은 물러가라" 외치는 참가자들이 대부분 여자 중고등학생들이라는 데에 놀랐다. 나는 내 눈이 믿기지 않아 그들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정말 내 딸 또래의 아이들이, 상당수는 교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7시경, 학생 참가자들은 계속 늘어났고, 서서 구경하고 있던 나는 "앉자! 앉자!"하는 여학생들의 연호에 명령이나 받은 듯이 그들 틈에 앉아야 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70%정도가 여중고생들이었다. 그들은 숫자만 많은 게 아니었다. 자유발언을 신청해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은 이들의 상당수가 여중고생이었다. '40대 중반 좌파 남자'인 나는 그들 틈에서 주눅들어 있었다.
둘, 여중고생들의 발언과 구호에 놀랐다.
"경제를 살린다고 어른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뽑았는데, 지금 경제가 살고 있나요?""미국소가 안전하다고? 우리가 바봅니까? 경제 살리기 전에 우리 목숨부터 살리세요.""이랬다, 저랬다 교육정책, 어른들이 잘못해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들었는데, 우리가 투표권이 없다고 해서 그대로 바라보고 있어야만 합니까?" "건강보험 민영화 할 거라고 하는데, 그럼 가난한 우리 식구들은 병나면 어떡합니까?"2만5천여명이 모인 이날, 무엇보다 내가 놀란 건 내 주변의 여중고생들이 합창하는 구호였다. 자유발언대에 오른 한 고등학생이 현직 대통령을 향해 욕설섞인 구호를 선창했다.
"이명박 XXX야, 나 좀 살려줘!"
내 주변의 여중고생들은 큰 함성과 박수를 보내면서 환호했다. 상당수는 욕설을 그대로 합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