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가공처리를 하는 웨스틀랜드 미트컴퍼니의 홀마크 미트패킹 도살장에서 노동자들이 도살소를 몰아넣으면서 소를 발로 차거나 포크리프트 블레이드로 때려 소들이 고통 속에 비명을 지르는 장면의 비디오 장면이 나왔다. 사진은 캘리포니아 치노 홀마크미트 패킹도살장 주자장에서 순찰하는 민간경비원.
AP=연합뉴스
이를 두고 고려대 최장집 교수는 "사이비 민주주의"라고 비판한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면 의회와 국민을 무시하면서 권한을 행사하고 여기에 단임제 대통령의 특성까지 결합되면서 국민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대통령의 정치행태를 지칭한다.
반응성이 없기 때문에 현재의 여론보다는 역사성을 강조하게 되고, 여론의 동향에 무감각하거나 이를 아예 무시하는 경향까지 나타난다. 쇠고기 문제에 대한 정부 대응이 그렇고, 한미FTA가 바로 이러한 민주주의의 위기, 헌법의 위기를 보여준다.(필자, 2007. 6. 18 여의도통신)
대한민국 제1조가 정한 '민주공화국'의 원리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우리 헌법의 핵심조항은 사실상 무시된다. 과연 정부는 헌법의 명령대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가?
잠시 스위스로 건너가보자. 스위스 헌법 제104조는 우리와 유사하게 농업관련 보호조항을 두고 있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일관되게 우리 헌법상 경제질서가 "사회국가 원리를 수행하여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 달성을 근본이념으로 삼고 있다"고 결정한다.
농업과 농민 보호에 있어서는 스위스 헌법과 우리 헌법이 실질적으로 차이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스위스는 GMO 관련 문제를 들어 스위스-미국 FTA를 국민투표에 붙였다. 당연히 부결됐다. 그러자 스위스 정부는 미련 없이 협상을 중단했다. 우린 지금도 한미FTA야말로 우리의 살 길이라고 외치며, 한미FTA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야말로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결정을 무시하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헌법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도록 정했다. 국민의 건강권을 좀 더 확대해석한다면 국민투표가 불가능하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국회에서 동의 받아야 쇠고기 사올 수 있다또 한 가지. 헌법 제107조 제2항은 명령규칙 또는 '처분'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경우엔 대법원의 최종심사권을 인정한다. 한미간의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은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의 고시' 형태로 공포되어 실시됐다.
한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4월 18일 합의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역시 농림수산식품부공고 제2008-45호를 통해 지난 22일 입법예고되었다. 하지만 이 고시는 단순한 고시가 아니라 국민의 실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처분적 성격'을 갖는다.
사실상의 공권력의 행사로 국민의 실생활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위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순간 대법원의 심사대상이 된다. 고시가 헌법이나 법률이 정한 식품안전법제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대법원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좀 더 법률적 논리를 확장하자면 단순히 한미 행정부 간의 '합의' 형식으로 진행해왔던 기존의 잘못된 관행을 이번 기회에 철저히 뜯어고쳐놓자는 것이다. 국가 대 국가 간의 약속이 조약이다. 단지 우리 고시 개정의 문제가 아니다.
한미간의 쇠고기 수입협상과 그에 따른 고시의 개정문제는 실질적 조약의 변경에 해당한다. 그것도 국민의 건강권과 관련된 중요한 조약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국회에서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정부는 문서의 형태로 조약으로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조약심사권을 행사하고 그런 다음 동의여부를 표결에 붙여야 한다. 과연 정부는 이러한 헌법적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좀더 나아가 미국산 수입쇠고기 문제는 한미FTA의 실질적 전제조건이었다. 이 문제는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도 시인한 바 있다(사실 필자는 더 이상 미국은 한미FTA를 진행할 필요가 없다는 쪽이다. 왜냐하면 4대 선결과제-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자동차 배출가스 강화 기준 철폐, 스크린 쿼터 축소, 약값 재평가 제도 철폐-를 통해 한국시장에서 얻을 만한 충분한 것들을 이미 얻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제조건만 내주고 본 협정은 얻지 못하게 되는 지극히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될 수도 있다. 처음부터 안 했더라면 괜찮은데 4대 선결조건은 내주고 본 협상은 얻지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