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변에선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김대홍
정순왕후 송씨. 그는 15세에 왕비에 책봉됐다.
1년 뒤 남편은 왕위를 내놓고 상왕이 되었고 그는 왕대비가 된다. 16세 때다. 다시 2년 뒤, 상왕이 된 남편은 복위운동에 휘말려 노산군으로, 그는 노산부인으로 강봉된다. 그 해 다시 한 번 복위운동이 일어나자 마침내 노산군은 죽음을 맞고, 역적 죄인의 아내인 그는 관노비 신세로 전락한다.
그 때 그의 나이는 18세. 가례를 올리고 부부가 함께 산 기간은 불과 1년도 안 된다. 그마저도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살얼음판 세월이었다. 소생조차 없었던 그는 그 뒤 64년을 더 살았다. 한많은 세월이었다. 이 때의 역적 죄인을 후세인들은 '단종', 부인을 '단종비'라 부른다.
단종비에 대해 김별아는 <영영이별 영이별>이란 소설을 통해 혼백을 위로했고, 신영복은 <나무야 나무야>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궁중에서 추방당한 그녀는 서울 교외의 초막에서 동냥과 염색업으로 한많은 생애를 마칩니다. 그녀의 통곡이 들려오면 마을 여인들도 함께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동정곡(同情哭)을 하였다고 합니다."단종비가 영월로 유배간 단종을 바라보며 눈물 적셨던 언덕이 동망봉이고, 옷에 자줏물을 들이며 생을 이었던 곳이 정업원(淨業院)이다. 그 자리는 지금 서울 동대문구 숭인동에 있다. 동망봉은 낙산과 동서로 마주보고 있다.
영하 4~5℃ 날씨에도 아이들은 뛰어논다골목여행은 신설동 로타리 쪽에서 시작했다. 숭인동 쪽으로 나있는 육교를 건너면 아파트 단지가 펼쳐진다. 겉보기엔 골목이라곤 전혀 없을 것 같은 모양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건물과 중장비 소리에 낮은 집은 모두 자취를 감췄을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발걸음을 옮기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12월 세 차례에 걸쳐 그 곳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