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는 안장에 올라가기 힘들다.(왼쪽) 얼마 못가 떨어지고 다시 타고를 반복하다 드디어 자전거가 달리기 시작했다.
정현순
4일째 되던 날 난 용감하게 목감천으로 자전거를 가지고 나갔다. 핸들을 붙잡은 손이 조금 떨려왔다. 아주 조심스럽게 목감천을 따라 자전거를 탔다. ‘야호!! 바로 이런 기분에 자전거를 타는 거였어.’ 신났다. 불어오는 바람이 경쾌함을 느끼게 했다.
그때 저쪽에서 유모차를 끌고 가시는 할머니 몇 분의 모습이 보였다. 난 할머니들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그 옆을 지나고 있었다. 그 순간 “우르르 꽝꽝~ 꽝꽝~” “어머나 괜찮아요?” “아니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왜 넘어졌어?” 하는 할머니 소리가 들려왔다.
난 자전거와 넘어졌고 정신이 번쩍 들면서 약간 창피했다. “아, 네 괜찮아요” 하곤 얼른 일어났다. 절뚝절뚝 다리를 절면서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내 모습을 보고 있던 아저씨 한 분이 “자전거 안장이 비뚤어졌네요”하면서 바로 잡아준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바지를 걷고 다리를 살펴보았다. 넘어진 그곳은 다행히도 콘크리트가 아닌 나무로 된 다리여서 충격이 적었다. 그런 덕에 특별히 다친 곳은 없었지만 며칠 사이에 종아리, 발 부분에 멍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다음날 조금은 겁났지만 다시 자전거를 끌고 목감천으로 나갔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내가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진 사실을 가족들은 아무도 모른다. 하여 지금은 누구의 도움 없이도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앞에 가던 손자는 가끔씩 뒤를 돌아다보더니 “할머니 잘 오고 있네” 하며 나를 챙긴다. 얼마나 갔을까?힘들었다. 손자를 불렀다. “우진아, 조금 쉬었다 가자.” 손자와 난 목감천을 쳐다보면서 쉬고 있었다. 다시 출발. 또 한 번 쉬자고 손자에게 청했다.
“할머니, 할머니는 왜 자꾸만 쉬자고 해?” “우진아 할머니는 우진이보다 50살이나 더 많잖아. 그러니깐 힘들지. 그리고 자전거 배운 지 얼마 안 되잖아” 하니깐 손자는 “그럼 갈 때는 할머니가 앞에 서서 가. 내가 뒤따라갈게” 한다.
손자의 말처럼 집에 돌아가는 길은 내가 앞장서서 갔다. 아주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달렸다. 손에서 땀이 났다. 너무 미끈거려 입고 있는 옷에라도 땀을 닦아야 했다. 위험했다. 이래서 장갑을 낀다는 것을 알았다.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하기는 했지만 숨이 꽉꽉 막히는 것 같았다. 하여 마스크와 선글라스, 안전모가 꼭 필요하다는 것도 절감했다. 통이 넓은 바지도 불편했다.
손자는 뒤에서 잘 따라오고 있었다. 가끔씩 “할머니 나 잘 가고 있으니깐 뒤 돌아보지 말고 잘가!” 하는 말도 잊지 않는다.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손자에게 물어봤다. “우진아 오늘 할머니 자전거 타는 거 어땠어?” “응, 잘 타는데 너무 느려. 더 연습해야겠어”한다. “그럼, 아직은 느리니깐 앞으로 연습 많이 할 거야.”
그날 내게는 아주 힘겨운 4Km 주행이었다. 손자와 함께 타는 자전거라 실수하지 않고 싶은 마음에 긴장한 탓도 있으리라. 손자의 말처럼 아직은 많이 부족하고 많은 단련을 해야 한다. 하지만 손자와 자전거타기는 정말 즐겁고 재미있었다. 이제 첫발을 내디딘 자전거 타기는 이렇게 시작이 되고 있었다. 손을 마주치면서 “우진아 다음에는 할머니가 더 잘 탈게” 하며 힘을 불어넣었다.
자전거 배우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도 되고, 손자와 친구 할 수 있어서 손자와 공유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더 늘었고, 할 수 있는 운동도 가짓수가 하나 더 많아졌고, 자전거를 타면서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얻어지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그야말로 '일석다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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