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을 대표해 배은심 어머니가 무대에 오르자, 추모제 참석을 위해 상경한 이한열 열사의 모교 광주 진흥고 학생들이 "어머니!"를 외치고 있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세상은 밝고 맑고 명랑하지만, 그렇다, 한열아, 우리는 20년 동안 그 날, 너의 주검과 만났던 단 하루의 경로를 다 이루지 못했다. 너의 죽음으로 오늘, 죽음은 스무 살 청춘의 나이를 먹는다. 너의 죽음으로 이 시대 청춘은 이리 밝고 명랑하다." <김정환 시인의 '거룩한 젊은 몸' 중에>
그랬다. 서울 시청 앞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밝고 명랑했다. 그들만큼 하늘도 모처럼 맑고 깨끗했다. 그리고 이한열 열사 20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사람들은 큰 소리로 외쳤다. "어머니!"
그러나 무대에 선 고 이한열 어머니 배은심씨는 한숨을 몰아 쉬었다. 다시 한 번 "어머니!"가 울려 퍼지고, '어머니'는 입을 열었다.
"제2, 제3, 제10의 이한열이 우릴 내려보고 있다"
"조금 있으면 시청 앞 시계 바늘이 5시가 된다. 우리 한열이가 전두환 정권이 쏜 최루탄 직격탄에 머리를 맞은 시간으로 알고 있다. 내가 한열이에게 그랬었다. 하더라도 제발 뒤에서 (시위)하라고. 그런데 한열이는 엄마 말을 안 들었다. 우리 한열이가 시위대열에서 신나게 자주와 민주를 부르짖었을 것이라 믿는다."
9일 오후 4시에 열린 추모제 무대에서도 모처럼 '밝고 명랑한 이한열'이 참가자들을 맞고 있었다.
'어머니'는 "한열이가 파카 입고 무등산 올라가면서 찍은 사진"이라며 "영정 사진을 보면서 후배들이 시무룩하지 않도록, 활짝 웃는 사진을 배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똑똑하고, 믿을 만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어진 '어머니'의 말은 전율을 느끼게 만들었다. 배은심씨는 "우리 한열이는 그래도 여러분이 추모제를 열어줬고,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제2, 제3, 제10의 이한열이 민주화 과정에서 허공에 떠있다, 지금 여기 시청 앞 광장 위에서 그들이 우릴 내려다보고 있다"고 상대적으로 소외받고 있는 '열사'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또 배씨는 "어떤 이는 민주화운동했다고 심의 과정에서 인정받았지만, 또 어떤 이는 분명 '민주'를 외치다 죽었는데도 현장에서 죽지 않았다고 또는 집에서 후유증으로 죽었다고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 유명한 장준하 선생님을, 어떤 생활을 했는지도 뻔히 알면서도 기각했다"고 민주화운동 관련 사망 인정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피해보상심의위원회(민보위)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어 배씨는 "독재 하수인들이 진급 따려고, 밥 한 술 더 먹겠다고 아무도 안 보이는 곳에서 사람을 데려다 죽인 것이 의문사"라며 "자식들도 불쌍하지만 10년 또는 20년 동안 부모들의 피를 토하는 심정은 불쌍하고 가엾다"는 말로 '민보위' 결정을 거듭 문제삼았다.
끝으로 "엄혹했던 세상에서 내 몸 하나 바쳐 많은 이들의 눈을 뜰 수 있게 해 준 사람들인 만큼, 심위의원회의 공평한 심의를 당부한다"고 말을 마친 '어머니'는 잠시 돌아서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다가 무대에서 내려갔다.
"6월 항쟁에 무임승차하고, 민족지도자까지 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