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항쟁 이후 전국단위 조직들이 건설되었다.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안동시 결성 선언문. 며칠 전에 작고하신 <몽실언니>의 작가 권정생 선생님이 이름이 보인다. 선생님은 작가이기 전에 지역 운동의 큰 어른이셨다.안호덕
87년 6월 10일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지명하는 날이다. 집회 준비랄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결의였고 각오였다. 며칠 전부터 6월 10일 전국 규모 동시다발 집회 준비가 있었다.
12시 조흥은행 사거리 앞.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내리니 군데군데 전경들이 쫙 깔려 있고 시내가 온통 웅성웅성한다. 누가 봐도 곧 금방이라도 뭔가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집회에서 나와 친구가 맡은 일은 총학생회장 선배가 동을 뜨면 플래카드를 펴서 길을 막는 일이었다. 사거리가 내려다보이는 다방에 자리했다. 곧 벌어질 일에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서로 말없이 커피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는데 선배가 눈짓으로 내려가잔다. 밑에는 벌써 삼삼오오 학생들이 모여있다. 긴장하는 눈빛들이 역력하다. 중간 중간 사복들도 있는 것 같다.
사람들과 눈인사를 하면서 초조하게 낮12시를 기다렸다. 11시 55분, 56분, 57분, 58분…. 가슴이 방망이질한다. 12시! '엥~' 학생회장 선배가 메가폰 사이렌을 켜며 사거리로 뛰어들었다.
"시민 여러분, 호헌 철폐, 직선제로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더 이상 머뭇거리다가는 선배가 고립된다. 옷 안에 감추었던 플래카드를 펼치고 길 가운데로 뛰어 들었다. 그 사이로 택시가 빵빵 소리를 내며 휙 지나간다.
호헌철폐! 직선제 쟁취! 플래카드 뒤로 삼삼오오 모여 있던 학우들이 모여들어 금세 200여명이 된 듯 했다. 일단은 성공. 애국가를 부르며 시외버스 터미널 쪽으로 행진하는데 대열이 급속히 늘어난다. 유인물이 뿌려졌다. 시민들도 호응이 좋았다.
시내버스 터미널 부근에서 농민들 대열과 합류하니 숫자가 배로 늘어난다. 학생, 농민, 야당 등이 주최한 집회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시작되었다. 버스터미널에서 경찰서 쪽으로 큰 길을 막고 이동하는데 대열은 끝없이 늘어나고 더러 차량 경적도 울렸다. 태극기 행렬, '호헌철폐, 독재 타도' 구호가 메아리쳐 들렸다. 보수의 땅이라는 안동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독재 타도를 외치며 길거리에 나선 것이다.
보수의 땅 안동에서 '독재 타도' 울려퍼지다
전경들과 맞닥뜨린 곳은 성소병원 앞. 최루탄이 터지고 군홧발 소리가 밀려들었다. 뒤로 밀려도 계속 밀어 붙였다. 골목으로 밀렸다. 앞 선 사람이 담을 넘고 있었다. 담을 넘으니 전경들은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막걸리 양조장인 것 같았다.
"지금 나가면 다 잡혀, 여기 있어."
50대가 다 된 분인 것 같았다. 거기 모인 사람이 스무여 명이 되는 것 같았다.
농민 아저씨에 촌스러운 넥타이를 맨 양복 입은 아저씨도 있었고, 아줌마도 있었다. 안동에서 어깨를 스치며 지나간 사람들이 다 나선 듯 했다. 눈 비비고 담배도 나눠 피우고 막걸리도 한 잔 얻어먹고 전두환 욕도 하다가 나오니 전경들도 시위대도 없었다.
일단 목성동 성당을 지나 시내에 들어오니 난리가 났다. 시위대와 전경들이 엉켜 누가 누구를 막고 잡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대열을 지어 구호를 외치고 가다보니 앞선 전경들은 그 앞 시위대를 따라 가고 있었다. 경찰도 시위대를 통제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몇 천 명일지 모를 사람들이 '독재타도' '호헌철폐' '직선제 쟁취'를 외치며 몇 시간을 온 시내를 몰려 다녔다.
문화회관 근처에서 잡혀 경찰서 수사과로 끌려 들어갔다. 들어가니 수사과가 만원이다. 잡혀온 사람들이 150여 명은 넘는 것 같았다. 나이 많으신 분들이 형사들 자리를 차고 앉아 있고 한쪽에서는 "죄도 없는데 왜 잡아 오냐"고 난리고, 또 한쪽에서 "밥 달라"고 난리였다.
형사들이 죄인처럼 한쪽 구석에 몰려 서서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풀어 줄 거라고 조용히 달라고 간청을 했다. 밖에서는 구호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을 석방하라"는 고함소리와 노래소리에 전경들은 문 앞에서 최소한 방어만 하고 있을 뿐이다.
밤 9시쯤 다 풀려났다. 경찰서 담벼락에 올라서고 문설주에 올라서서 애국가를 불렀다. 안동에서 일어난 6·10 항쟁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