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서울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는 '박종철 열사 49재 20주년 추모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박 열사의 극락왕생을 바라며 천도재와 살풀이 공연 등이 열렸다.오마이뉴스 이민정
"20년 전 한 젊은이가 이 땅을 떠났습니다. 그의 주위에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그가 떠난 20년 후인 오늘 그의 정신과 형체를 다시 볼 수 있는 뜻깊은 자리를 만들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78)씨는 300여명의 관중 앞에서 떨지 않고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BRI@그는 "불자 여러분과 각 종교계 대표들이 이 자리에서 6월항쟁 20주년 기념행사를 이어 나갈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며 "앞으로 이 나라 민중이 상생의 힘으로 미래를 여는 데 동참하기를 바란다"고 말하자 관객석에서는 환호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부친은 22살 꽃다운 나이의 아들을 잃었지만, 대신 20년이 지났어도 아들의 죽음에 경의를 표하는 수많은 시민을 얻은 셈이다. 행사가 열린 대웅전 앞에는 "박종철 열사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등의 추모사가 적힌 대형 플래카드가 서 있었다.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는 지난 1987년 고문 피해로 사망한 박종철 열사 49재의 20주년을 맞아 추모 행사가 열렸다. 49재란 사람이 죽은지 49일째에 치르는 불교행사로, 이날 추모식은 '6월민주항쟁 20년사업 불교추진위원회'(이하 불교추진위)가 주최했다.
부친 박정기씨의 씩씩한 모습과는 달리 모친 정차순씨는 행사 내내 어두운 표정이었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도 손사래를 치며 "몸이 아파서"라고 말을 줄였다.
죽은 아들을 위한 살풀이가 무대에서 펼쳐지던 중 "잘 가시오"라는 구음이 또렷하게 들리자 정씨는 손수건을 꺼내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이날 추모식에는 재의식과 살풀이 등 천도재(죽은 사람의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한 불교의식)가 한 시간 동안 열렸다.
87년 약식 49재, 20년 지나 대형 추모제로
박 열사의 49재는 1987년 3월 3일 같은 장소인 조계사에서 열렸다. 하지만 당시 행사는 "사회 불순세력에 의해 이용될 수 있다"는 경찰쪽 주장에 의해 예정된 49재는 원천봉쇄됐고, 대신 모친이 다니던 부산 사리암에서 약식으로 치러졌다.
여익구 불교추진위원회 상임공동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조계종 총무원장이 49재를 조계사에서 지내기로 했지만, 애석하게도 조계사 앞마당이 아닌 부산 사리암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며 "많은 스님들과 신도들이 조계사에 들어오기 위해 애썼지만 경찰 병력이 막고 있었다"고 말했다.
여 대표는 인사말에서 "박 열사는 민주화의 화신이요, 이제는 평화와 번영, 통일의 화신으로 승화됐다"며 "비록 그 분은 살아 돌아오지 못하지만, 우리 마음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