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노조원들은 사측의 직장폐쇄에 항의하며 24일 오전부터 서울 서대문 시사저널사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농성천막에 설치된 시사저널 표지 모음 현수막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한국 사회는 무척 복잡하다. 필자가 농담 비슷하게 자주 하는 말이지만, 한국 사회에는 전근대(pre-modern)와 근대(modern)와 탈근대(post-modern)가 섞여 있어, 어떤 사안이든지 단순한 설명이 통하지 않는다. 21세기 최첨단의 IT혁명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 동전의 뒷면에는 케케묵은 봉건의 냄새가 진동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타 선진국이 수백년에 걸쳐 진행해 온 진화의 과정을 수십년만에 압축⋅비약하다보니, 근대적 시민혁명의 요소가 제대로 성숙되지 못했고, 따라서 전근대의 잔재가 청산되지 못함과 동시에 탈근대의 뿌리가 허약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경제관련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필자가 평소 뼈저리게 느끼는 한국 사회의 전근대적 요소가 하나 있다. 그것은 권리와 권한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권리는 원래 특정 자연인에게 귀속된 것이고, 그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극악무도한 범죄인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권리를 영구히 박탈하는 것(예컨대, 사형제)을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반면, 권한은 특정 자연인에게 귀속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따라서 권한을 남용하거나 오용하면 위임관계는 철회될 수 있다. 아니 당연히 철회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는 권한을 권리로 착각하고, 심지어 그것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런 현상이 가장 심각하게 벌어지는 것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한국 사회의 가장 선진화된 영역인 기업 부문이다.
권한과 권리를 혼동하는 한국의 기업
@BRI@재벌기업 차원에서 보면, 5%의 지분을 소유한 총수일가가 대대손손 '오너'로서 군림하는 경영권에 대한 오해가 그것이다. 언론 기업으로 한정하면, 언론사주 또는 발행인의 편집권에 대한 오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경영권과 편집권은 권리가 아니라 권한이다. 타인의 위임에 의해서만 성립하는 것이고, 위임관계의 범위 내에서만 정당하게 행사될 수 있다. 그런데 왜 권한을 신성불가침의 권리로 착각하고 있는가.
이런 착각이 빚어낸 참극이 바로 '시사저널 사태'이다. 이학수 부회장(전략기획실장)이 삼성그룹의 제2인자라는 것은 한국 사회의 상식이다. 그만큼 많은 권한을 행사하고 있을 것이다. 이학수 부회장이 그 권한을 정당하게 행사하고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전횡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한국 사회의 미래상이리라. 나아가 이런 생각의 차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한 것이 작년 2월 7일 이학수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의 고위임원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의 요지이다. 한마디로 '반성과 변화'를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시사저널>의 모 기자가 '이학수 부회장이 전횡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썼다. 그 기자가 취재사실을 근거로 양심에 따라 기사를 작성하였다면, 이는 그의 '권리'이다. 물론 그 기사가 사실을 왜곡하였고 명예를 훼손하였다면, 그 기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이학수 부회장의 '권리'이다.
그러나 <시사저널> 사장이 편집국장이나 당해 기자에게 사전 설명도 없이 야밤에 인쇄소에서 그 기사를 들어내는 것은 권리의 행사가 아니라 '권한의 남용'이다. 도대체 누가 그런 권한까지 사장에게 위임했는가. 사장의 권한 남용은 기자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고, 독자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사장은 짝퉁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상한 시사저널'을 3주 연속 발행했다. <시사저널> 기자가 쓴 기사는 하나도 없이, <시사저널>과는 논조가 전혀 다른 모 신문사의 전현직 언론인들이 작성한 기사로 채워졌다. 이 역시 권한 남용이다. 사장의 편집권은 '언론사로서 시사저널의 평판을 유지하고, 사기업으로서 시사저널의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범위 내'에서 위임된 것이다. 그런데 이른바 '짝퉁 시사저널'은 시사저널의 평판을 무너뜨리고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시사저널의 독자이자 취재원 중 하나인 필자는 '짝퉁 시사저널'을 살 이유도 없고 인터뷰에 응할 이유도 없다. 필자만 그러겠는가? 설사 사장이 기자들의 저항을 제압하고 나아가 기자들의 대폭 물갈이해서 '정상적으로' 시사저널을 발행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필자는 '새로운 시사저널'을 살 마음이 없고 인터뷰에 응할 마음도 없다. 필자만 그러겠는가?
<시사저널> 사장의 권한 남용, 원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