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환 열사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1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서 동훈그룹을 고발하고 근로감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수림
방영환씨는 변형된 사납금제를 묵인하는 이 근로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법률대로 주 5일 40시간을 일했습니다. 그러자 사측은 (대기 및 이동시간은 제하고) 승객이 승차한 시간만을 반영해 임금을 지급했습니다. '방영환열사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공개한 방씨 급여명세서를 보면, 지난해 12월 이후 월급은 50~100만 원 선이었습니다. 이는 최저임금(201만 원)에도 못 미치는 금액입니다.
3년여의 투쟁 끝에 부당해고를 인정받아 복직한 회사에서, 이번엔 임금도 제대로 못 받는 처지가 된 방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짐작할 순 없습니다. 다만, 그는 다시 투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곤 올해 2월부터 해성운수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왔습니다. 그러나 부당해고에도 3년여를 저항한 그였지만, 바람을 끝내 이루진 못했습니다. 그 생의 마지막 요구는 월급제 준수, 체불임금 지급, 사주 등 책임자 처벌이었습니다.
대단한 요구는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법·제도를 만들라거나, 임금을 인상해 달라는 것도 아니었지요. 그저 있는 법을 지키면 될 일이었습니다. 법률에 따라 사납금제를 온전히 폐지하고, 1일 8시간 주 40시간 근무를 보장하고, 그에 따른 월급을 지급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저 법대로만 하면 되는 요구였습니다.
이윤이 우선인 사용자들로선 편법으로라도 기존 사납금제를 유지하고 싶었겠지요. 비단 동훈그룹 소유 택시회사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사납금제는 택시 사업자들에겐 황금알을 보장해 준 제도였으니까요. 1982년 택시 사업을 시작한 동훈그룹도 이 사납금제하에서 승승장구하며 택시회사를 21개나 거느리게 됐습니다. 그 사이 택시 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민은 질 낮은 서비스에 시달려야 했지만요.
이윤 창출이 존재의 목적인 사용자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양천구청이나 서울시, 그리고 고용노동부 등 관리감독 기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법치와 공정은 왜 이런 문제에선 작동하지 않을까요. '건폭'이라며 노동조합을 탈탈 털 때 동원된 권력기관은, 사용자들의 불법 앞에선 좀체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방영환씨는 법을 어기는 회사보다 묵인·방조하는 권력기관을 보며 더 절망했을지 모릅니다. 폭로하고 투쟁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무력감, 이미 있는 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절망 말입니다.
1987년 민중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으로 형식적이더라도 민주주의 꼴을 갖춘 지 어느덧 40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극단적 방식의 저항이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멀게는 전태일부터 2023년 방영환까지 50년 넘게 참담한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에겐 법이 무용지물인 시대를 산 전태일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절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가지 기억할 건, 전태일과 이용석 그리고 방영환 같은 노동자들의 저항이 있었기에 주 40시간 노동제 등도 시민적 권리가 됐다는 점입니다. 소수의 이들이 제 몸을 불사르며 이루고자 한 미래는 다수 노동자가 누리는 현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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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 해달라'는 요구... 몸을 불살라야만 했던 택시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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