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은 전형적인 풀꽃문양 항아리이고 오른쪽에 있는 항아리에는 "이것 사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돈자(잘) 붐니다"라고 씌여 있다. 박물관에 들어가서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에 전시되어 있다.
오창환
지난 8월 26일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수장고에서 어반스케쳐들을 위해서 박물관 야간 개장을 하기로 했다.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열쇠고리를 만드는 행사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파주 챕터와 고양 챕터가 함께 모여 스케치 행사를 하기로 했다. 늦은 오후 자유로를 달려 파주로 향하는 차에서 보는 양떼 구름이 환상적으로 예쁘다.
파주 박물관에서는 나전 칠기 특별전 <반짝반짝 빛나는>을 하고 있었다. 자개로 장식된 각종 전통 생활용품과 현대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이 전시는 8월 27일 종료했다). 이날 저녁에는 나전 칠기 특별전에 맞춰서 자개로 열쇠고리 만드는 행사를 진행했는데,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많이 왔다.
나는 박물관 외부 풍경보다는 지난번 방문에서 인상 깊었던 해주 항아리를 그리고 싶었다.
해주항아리는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황해도 해주지방 민간 가마에서 만들어진 청화백자를 말한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대략 100년에서 150년 전에 만들어진 자기다.
조선시대에 경기도 광주군에는 왕실에 도자기를 납품하던 광주관요(廣州官窯)가 있었는데 왕실의 몰락과 수요 부족으로 1884년 폐요(廢窯)되었다. 이후 그곳에서 일하던 도공들이 각 지역으로 흩어져 지방 민간 가마에서 도자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해주는 예로부터 중국과 연결되는 해상교통의 요지이자 물류의 중심지였으며, 해서(海西)로 통용하던 황해도의 정치 경제적 중심지로 번성한 곳이었다. 게다가 해주에서는 품질 좋은 백토와 규모가 큰 가마가 있어서 옹기 같은 큰 기물을 많이 만들었다.
해주항아리는 장류와 곡식 등을 보관하기에 적합한 옹기의 형태와 고온에서 구워져 치밀하고 견고한 백자의 특성이 결합됐다. 당시 상당히 고가였음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체계화된 관요에서는 도자기를 빚는 도공과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화공이 분리되어 있었다. 해주가마에서는 도자기를 빚는 도공이 그림도 그린 것으로 보이는데 거칠면서도 소박한 솜씨가 오히려 해주항아리에 매력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