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이 1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선거제 개편에 관해 토론하고 있다.
남소연
한창 학기 중인 6월 말 기존의 NEIS가 느닷없이 '4세대 NEIS'로 대체되면서 학교 현장은 도떼기시장처럼 변했다. 교사별 업무에 따라 권한 이양 작업을 해야 했고, 학교마다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도록 연수를 진행했다. 컴퓨터 작업에 서툰 교사들은 당황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교육부가 그 흔한 공청회와 시연조차 없이 우격다짐으로 일괄 도입할 때부터 교사들은 적잖이 불안해했다. 아무리 완벽한 시스템일지라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어서다. 전교조나 실천교육교사모임 등 교육단체에서는 시스템의 전환에 신중할 것을 거듭 요청했다.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다. 다른 항목도 아닌 평가 관련 영역에서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다. 출제 내용과 성취기준, 난이도와 배점, 정답이 적시된 '문항 정보표'가 다른 학교의 시스템에서 출력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직후 '4세대 NEIS'는 며칠 동안 먹통이었다.
학교마다 기말고사를 코앞에 둔 시점이어서, 파장은 엄청났다. 교육부는 서둘러 시험 기간 일정을 늦추거나 문항 번호와 답지를 변경하라는 긴급 공문을 띄웠다. '문항 정보표'의 유출은 교과에 따라 출제 내용이 공개됐다는 것이어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월요일에 기말고사가 시작되는 학교에서는 주말에도 교사들이 출근해 시험 문항을 재출제하고 수정하는 등 발을 동동 굴러야만 했다. 교육청이 한 건 교육부로부터 접수한 긴급 공문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일선 학교로 즉시 하달한 게 전부였다. 교육청이 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교육부 장관과 담당자에 공식 항의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더욱 황당한 건 긴급 공문을 발송한 며칠 뒤 교육부의 지침을 제대로 지켰는지 보고하라는 공문을 다시 학교에 보냈다는 점이다. 이 또한 교육부의 지시를 그대로 따른 것이겠지만, 얼마나 무례하고 무책임한 행태인지 깨닫지조차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교육청은 규정에 따라 처리했다는 답변만 되뇌고 있다.
'점입가경'이라고 해야 할까. 며칠 전 관내 모든 학교에 하달한 '국회의원 요구 자료 요청' 공문을 보고 있으면, 교육청의 존재 이유가 궁금해진다. 학교 도서관에 '현대 정치사 인물 관련 도서 보유 현황'을 보고하라는 내용인데, 단지 보유 여부에 따라 '○' 또는 '×'로만 표기하도록 했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보고하라는 '국회의원 요구 자료'는 일선 교사들을 괴롭히는 '잡무'로 악명이 높다.
문제는 공문의 요구 사항이 자칫 오해를 살 소지가 다분한 데다, 학교 내에서조차 이념적 갈등을 부추길 수 있는 민감한 내용이라는 점이다. 제목엔 '현대 정치사 인물'이라고 해놓고선 특정 인물들을 적시해놨다. 역대 대통령들과 함께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손석희 전 JTBC 사장, 그리고 새마을운동과 세월호까지 등장한다.
당적을 갖고 시장직을 수행한 박원순까지는 그렇다 쳐도, 평생 언론인으로 살아간 손석희까지 범주 안에 끼워 넣는 건 당혹스럽다. 심지어 세월호 관련 도서까지 문제 삼는 건, 해당 국회의원실에서 요구 자료를 보낸 저의를 의심케 한다. 저들을 뭉뚱그려 좌파로 낙인찍고 학교가 좌경화됐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생각된다.
공문을 받아 든 도서관 사서 교사는 십수 년 근무하면서 가장 황당한 공문이라고 토로했다. 다른 교사들도 국가가 임의로 '불온서적'을 지정해 치도곤 하던 군사독재정권 시절이 떠오른다고 입을 모았다. 좌우나 진보, 보수의 정확한 기준이라도 제시한다면 모를까, 해당 국회의원실 입맛대로 분류한 것이어서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 도서관의 통계를 살펴봤다. 실제 관련 도서 보유 여부는 학교마다 차이가 있을지언정 대강 어슷비슷할 것이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터 현 윤석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관련 도서가 비치돼 있지 않는 인물은 박근혜와 윤석열, 단 두 명이다. 둘 다 보수 정권으로 분류되니, 외견상 학교가 좌편향되어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을 듯하다.
세월호 참사, 또 갈라치기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