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카라 시내에서 본 마차푸차레
Widerstand
생각해보면 저는 포카라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호숫가를 걸었지만 배 한 번 타지 않았습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호수에서 유유히 배를 타고 있을 때에도, 저는 어느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전망대에 올라서도 산은 보지 못했습니다. 설산의 도시의 배경처럼 그저 거기 있었을 뿐이지요.
하지만 왠지 포카라의 골목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 것도 없이 비워져 있었던 시간들이, 꽉 채워져 있었던 시간들보다 오히려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포카라는 많은 사람들이 스쳐간 도시였습니다. 저 같은 한적한 여행객도 있었고, 높은 산을 바라보는 등반객들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밀려난 난민까지도 이 도시에 모였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는 도시를 스쳐 떠나갔고, 다른 일부는 그럴 수 없어 도시에 남았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골목과 마을의 풍경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쉽게 많은 것을 비워낼 수 있는 도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은 설산을 찾아, 휴식을 찾아, 호수를 찾아, 때로 자유를 찾아 온 사람들의 도시였으니까요. 그렇게 스쳐가는 이들의 흔적만이 켜켜이 쌓여 굳어진 도시였으니까요.
삶이 너무도 꽉 채워져 아무것도 들어갈 틈이 없을 때, 저는 언젠가 포카라에 돌아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간을 비우고, 내 안에 있는 것을 비우고, 새로운 것을 채워낼 준비를 할 수 있는 도시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이 도시를 스쳐 지나가고 나면, 이 곳에서 비워낸 저의 흔적도 언젠가 여기 남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때는 저도 이 도시의 일원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비워낼 시간들을, 다시 포카라를 스쳐갈 날을, 저는 벌써부터 그려보고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록되지 않은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입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