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현 작가의 'Peak-21'. 멋진 작품인데 눈에 잘 띄지 않는곳에 있어 대부분의 스케쳐들이 조형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오창환
어반스케쳐스 챕터들은 매월 정기 모임을 하는데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는 장소 정하기가 쉽지 않다. 카페에서 하면 편하기는 한데 그릴 대상이 제한되어 있어서 가능하면 넓고 그릴 것이 많은 곳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넓은 곳에 가면 그릴 대상을 찾기가 오히려 어려울 수도 있지만, 어렵사리 찾아서 그리는 것도 어반스케치의 매력이다. 어반스케쳐스 고양 2월 모임은 스타필드 고양에서 하기로 했다.
스타필드는 워낙 커서 거리 전체를 건물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일반적인 도로처럼 반려견을 동반하고 산책할 수 있다. 물론 반려견을 숍에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안 된다.
나는 일찌감치 가서 건물 오른쪽 끝에 있는 조형물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 조형물은 심재현 작가의 작품 'Peak-21'이라는 작품인데 겹겹이 쌓여 있는 산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심재현 선생님은 1938년생으로 원래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가 뒤늦게 미술을 공부하여 1967년 홍익대 조각과를 졸업하고 1971년 미국으로 이민 가서 L.A에서 오랫동안 갤러리를 경영하셨다. 1996년 다시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 귀국하였다.
다음 해인 1997년, 당시 한국 조각사상 최대 조형물이었던 '광주 5.18 기념조각공원' 조형물 공모에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1등으로 선정되며 작가로서의 전기를 맞게 된다. 그 후 선생님은 건축주들이 가장 선호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이 되셔서 수많은 환경조각을 만드셨다.
한국에너지관리공단, 한국전력공사, 정보통신부 중앙우체국, 동아생명, 한화,동부금융센터, 남양주현대프리미엄아울렛 등 거리 곳곳에 선생님의 작품을 볼 수 있으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기념비적인 교회 조각도 많이 만드셨다.
심 선생님 작품 초기에는 미니멀한 작품을 많이 하셨는데 점점 더 다양한 색채와 형태의 조각을 하시는 것 보면, 작가님의 작품 세계는 나이들수록 젊어지는 것 같다.
나는 심재현 작가님과 개인적인 안면도 있는데, 오래전에 한국 조각가 십여 명이 독일 뒤셀도르프 의 플란-디(Plan-D) 갤러리에서 초대 전시를 한 적이 있다. 전시 제목이 'Bagage Limit'(여행가방만큼)이었는데, 작가가 조각 작품을 여행가방에 넣을 수 있는 만큼 넣어 독일로 가져가서 직접 설치한다는 개념이다.
여행 가방에 가지고 가니까 모든 조각이 작다고 생각되지만, 작가들은 저마다 제한(Limit)을 넘어서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여행 가방에서 꺼낸 작품에 공기를 넣어 풍선처럼 부풀려서 거대하게 만든 작품도 있었고, 가방에서 꺼낸 파이프를 연결해서 크게 만든 경우도 있었다. 심재현 선생님은 그때 스테인리스로 된 원통 작품을 갖고 오셨다.